[시민의 힘 NGO] 부부 통일운동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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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0년 이상 통일운동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신나는 때가 없습니다.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부부는 평화.통일운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부부 통일운동가 김창수(金昌洙.35)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약칭 민화협)정책실장과 정경란(丁京蘭.35)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약칭 평화여성회)정책국장은 요즘 감회가 새롭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일종의 '금기' 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통일과 화해 무드가 기대 이상으로 무르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88년 통일운동을 시작할 때 불온시하던 분위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고려대 동문인 이들 부부는 지난 84년 겨울 사회과학 서클에서 세미나를 주도하던 2학년 남자 선배(철학과)와 의욕 넘치던 1학년 여자 후배(정외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金씨는 학생운동으로 두번이나 구속되는 시련을 겪은 뒤 88년 한국 통일운동의 태동으로 일컬어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및 세계대회' 추진본부에서 일하며 통일운동에 발을 딛게 됐다.

이후 한국 통일운동사에 기록될 굵직굵직한 사건과 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金씨가 있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는 범종교.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온겨레 평화 대행진' 행사를 기획.주도했으며 8.15 기념행사와 남북 기아 아동 돕기, 소년병 징집 반대 등의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金씨는 현재 민화협 외에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와 '통일맞이 문익환목사 기념사업회' 두 단체에서도 정책실장으로 활약하며 통일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차세대 통일운동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丁씨는 대학원 졸업 후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통일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으며 97년에는 국제단체인 제네바 국제여성평화자유연맹이란 단체에서 '대인지뢰 금지운동' 에도 참가해 온 평화운동의 신예다.

이들이 결혼에 골인하기까지는 통일에의 험로 만큼이나 고비고비를 넘겨왔다.

金씨의 구속으로 애간장을 태우곤 했던 丁씨는 겨우 양가로부터 결혼허락을 받은 직후인 92년 金씨가 큰 교통사고로 다리 절단의 위기에까지 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金씨는 반년 정도의 입원 끝에 약간의 장애만 남긴 채 무사히 퇴원하고 또다시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丁씨는 "혹시나 의기소침할까 걱정했는데 좌절을 극복하는 모습에서 깊게 신뢰하게 됐다" 고 했다.

"통일의 과정에는 남과 북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관용의 문화가 필수적" 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은 "분단도 통일을 위한 긴 과정의 일부로 보면 항상 새롭다" 고 말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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