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반세기] 학계 새로운 연구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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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25 50주년을 맞아 학계에선 한국전쟁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냉전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옴짝달싹 못했던 한국전쟁이 서서히 족쇄를 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한국역사연구회 주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 '한국전쟁의 재인식' 에서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전쟁 연구는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로 재단해서는 안되며 전쟁에 대한 기억을 공포와 분단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 고 주장했던 것은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예다.

지금까지 6.25 관련 학술대회라면 정치학계가 전쟁기원론과 책임론을 규명하는데 진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더욱이 이 심포지엄은 역사학계가 주최한 첫 행사여서 관심을 끌었다.

최근 서점에 나온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전쟁과 사회-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돌베개)는 전쟁 뒤에 가려져 있던 민중들의 체험 즉 국가가 아니라 민족.인권의 관점에서 한국 전쟁을 재조명하고 있다.

정치학과 사회학을 결합한 첫 연구서로 평가받는 이 저서는 백성의 체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국 전쟁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꼽히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7월초 발간할 계간 학술지 '정신문화연구' 2000년 여름호에 실린 한국전쟁 특집도 주목할 만하다.

모두 4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철저하게 1차 사료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최근 한국 전쟁 연구의 새 흐름이기도 하다.

특히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는 노근리 양민학살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담은 북한군 노획문서와 당시 AP통신 종군기자의 일기 등의 1차 사료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심포지엄에서도 기광서 조선대 교수가 소련의 1차 자료를 분석해 스탈린이 한국 전쟁에서 시종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병욱 가톨릭대(역사학)교수 "최근 전쟁 연구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과 연구자들의 층이 많이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또 소련.미국 비밀문서 등 제한적이었던 한국전쟁 관련 자료들도 최근 많이 개방돼 구체적인 실상 분석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한국 전쟁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현희 성신여대(사학과)교수는 "한국 전쟁 연구에서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점차 벗어나는 것은 긍정적일지 모르나 일부 진보적인 주장과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사료의 소개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고 우려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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