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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Me First) 우보만리(牛步萬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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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 미세한 온도 변화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다르푸르의 비극’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은 사하라사막 남쪽 수단공화국의 서부에 있는 지역. 아랍계 유목민들이 아프리카 농민들의 땅에서 가축에 풀을 먹이며 살던 평화로운 곳이었다. 비극은 1980년대 중반 발생한 가뭄에서 시작됐다. 물과 비옥한 땅이 부족해지자 주민끼리 갈등이 생겼다. 아랍계 유목민들이 이웃 농민들을 공격하면서 피를 부르는 참극으로 비화했다.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났다. 학자들은 처음에는 농민들의 과잉경작으로 지력이 소모됐고, 유목민들이 가축을 너무 많이 키워 목초지가 고갈돼 가뭄이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새로운 이론은 충격적이다. 북대서양 위에 떠 있는 연무질 구름이 약간의 햇빛을 외계로 반사해 바다 표면을 국지적으로 냉각시켰다. 이 결과 열대수렴대가 남쪽으로 옮겨가 종전에는 비가 잘 내리던 다르푸르에 가뭄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황산염 연무질은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석탄이 탈 때 주로 발생한다. 결국 화석연료의 사용이 비극을 잉태했다는 주장이다. (가브리엘 워커, 데이비드 킹 『핫토픽』)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인의 삶을 위협한다는 건 새로운 학설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온난화 회의론을 외치지만 192개국 대표들이 18일까지 코펜하겐에 모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만 봐도 온난화는 심각한 현안임에 틀림없다. 이번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나마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원칙에는 뜻을 모았다니 다행이다. 이 원칙이 허튼 말이 돼서는 안 된다. ‘나부터(Me First)’ 실천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기조연설에서 “지구의 대체재는 없으며, 지구를 구하기 위한 행동을 대체할 것도 없다”고 역설했다.

전일본항공(ANA)은 승객들이 비행기 탑승 전에 용변만 보아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캠페인을 했다. 일부에서는 우스운 짓이라고 비아냥댔지만 이런 발상의 전환이 지구를 구하는 첫걸음이다. 소의 해였던 올해 우리는 소의 걸음으로 만리길을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지혜를 되새겼다. 지구촌을 살리는 데도 이런 지혜가 꼭 필요하다. 안 쓰는 전기기구의 플러그를 뽑고, 낡은 전구를 교체하는 식의 작은 실천이 꾸준히 이어질 때 지구는 생기를 되찾는다. ‘나부터’ 시작이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