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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19>조승우가 그립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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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호 05면

딱 1년 전 이맘때였다. 그는 머리를 짧게 깎았다. 논산훈련소 앞은 카메라 플래시도, 팬들의 응원도 없었다. 평범한 젊은이처럼 그는 가까운 지인 서너 명과 인사를 나눈 뒤 발길을 돌렸다. 배우 조승우의 군입대는 그렇게 단출했다.

조승우는 자타 공히 인정하는 뮤지컬 최고 스타다. 그가 군대에 가자, “ ‘포스트 조승우’는 누구일까”를 놓고 한동안 얘기가 오갔다. 몇몇 언론에서 기사가 나왔고, 몇몇 배우가 거론되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가 조승우의 빈자리를 채웠을까. 홍광호? 조정석? 아님 신성록?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다. 조승우만 한 인기와 폭발력,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 뮤지컬 배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나 ‘타짜’의 고니로 조승우를 기억한다. 하나 그건 반쪽에 불과하다. 무대 위 조승우는 훨씬 크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 하이드로 변신할 땐, ‘집어삼킨다’란 말이 딱 어울릴 만큼 그는 관객을 쭉 빨아들였다. ‘맨 오브 라만차’의 마지막 장면, 계단을 뚜벅뚜벅 걷던 조승우의 시선이 아래를 물끄러미 향하더니, 어느새 고개를 휙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그 순간,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개를 까딱하는 것만으로 비장함을 보여주는 게 조승우였다.

그렇다면 무대 바깥의 조승우는 어떨까. “비위 맞추기 힘들다”라는 게 대체적 반응이다. 특히 홍보·마케팅하는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터뷰 한번 잡기 참 힘들다. 방송 나가는 건 언감생심이다. ‘배우가 연기하면 됐지, 왜 이렇게 날 이용하려 드느냐’는 정서가 강하다”라고 한 영화 홍보 담당자는 말한다. 그러고 보니 ‘무릎팍 도사’는 물론이요, 그 흔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조승우를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반면 같이 작업한 창작자들은 대부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 ‘맨 오브 라만차’ 때였다. 메인 타이틀곡을 부르는 데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앞을 ‘빵’ 치고 나가자, 뒷부분에 살짝 힘을 빼 보자, 중간에 액센트를 넣자 등등. 내 요구대로 다 바꿔 불렀다. 세상에 이런 배우 처음이다”라고 전했다. ‘헤드윅’ 연출자 이지나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대충 연기를 해도 남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타고난 천재다. 근데 노력까지 한다. 연구도 한다. 미칠 정도다. 앞으로 조승우 이상의 배우를 만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대중은 스타에게 참 많은 걸 원한다. 신비롭기도 하면서, 톡톡 쏘는 말주변도 있고, 인간적인 면도 있었으면 한다. 그건 지나친 기대다.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주변까지 잘 배려해 주길 바라는 건, 착한 청순 글래머를 꿈꾸는 남자들의 로망과 비슷하다. 보통 사람과 다르기에 ‘스타’인 것이다. ‘자기중심적’은 스타의 특권이자, ‘자기중심적’이어야 스타가 될 수 있다.

이지나 연출자는 “조승우의 몸엔 7세의 어린아이와 70세의 노인이 함께 들어 있다”고 말한다. 툴툴거리고 고집 부릴 땐 7세가 나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세밀한 부분을 챙길 땐 70세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면 철이 든다고들 하지만, 난 조승우가 여전히 ‘까탈스럽기’를 바란다. 내년 10월 말 제대하는 조승우에게서 7세 어린아이의 모습이 사라지면, 그만의 아우라 역시 약해지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팬들이 가장 원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무대 위 도도한 조승우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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