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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김대통령-김위원장 영빈관 대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3일 오전 11시45분 평양.

넓은 호수가 시원하게 보이는 백화원 영빈관(북한측 요청에 의해 백화원 초대소의 명칭이 13일부터 바뀜)에 남북정상이 도착했다.리무진 승용차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각각 오른 쪽과 왼쪽 문을 통해 내렸다.그들은 이미 한시간 가량 차중(車中)회담을 나눈 상태였다.

金대통령 일행은 55분동안 金위원장의 극진한 영접을 받았다.金위원장은 낮 12시40분쯤 자리를 떴으며,그 사이 20분간 제1차 공식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안내와 기념 촬영=金대통령이 숙소 현관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북한 여성들이 꽃다발을 전달했다.金대통령과 이희호(李姬鎬)여사가 “감사합니다”고 인사했고,金위원장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두 정상은 기념촬영을 위해 접견실의 벽에 걸린 대형 자수그림 앞에 섰다.거센 파도가 치는 그림이다.金대통령은 환한 웃음을 머금은 반면,金위원장은 다소 엄숙한 표정에 양발을 조금 벌린 모습이었다.

金위원장은 이어 李여사에게도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권유해 金대통령 부부와 함께 촬영을 했다.그리곤 크고 괄괄한 목소리로 “장관들도 같이 합시다”고 제의,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촬영을 마치자 金위원장은 金대통령 일행에게 “감사합니다”고 말했다.이 장면은 텔레비전 생방송에서 또렷하게 잡힌 金위원장의 첫 목소리였다.

◇남북정상 공식대좌=金대통령 일행은 金위원장의 안내로 접견실에서 회담장으로 이동했다.회담장 벽면 곳곳에 파도·꽃·산·폭포 등이 그려진 산수화가 걸려있었다.

金대통령이 “무슨 그림들입니까”라고 묻자 金위원장은 “원래는 춘하추동(春夏秋冬)그림입니다”고 했다.옆에 있던 전금진(전금철)아태평화위 참사가 “묘향산의 춘하추동을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金위원장은 남측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비교적 많은 말을 건넸고,金대통령은 金위원장의 말에 진지하게 대응했다.

金대통령은 시종 바른 자세로 또박또박 말을 했으나,金위원장은 몸을 金대통령쪽으로 기울이고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 위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다음은 주요 대화내용.

▷金위원장=“(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을 향해)용순 비서,金대통령과 자동차를 같이 타고 오느라고 수행한 장관들과 인사를 못나눴어요.(남측 공식수행원을 향해)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박재규)통일부 장관은 TV로 봐서 잘 압니다.(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고)남북 정상회담 북남합의때 TV로 많이 봤습니다.” (김용순 위원장이 임동원 대통령특보에게 공식수행원 소개를 부탁했고,林특보가 차례로 장관을 소개할 때마다 金위원장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金위원장=“날씨가 대단히 좋고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밤에 金대통령의 코스를 대줬습니다(알려줬다는 뜻).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 초대소까지 가는지 알려줬습니다.

준비관계를 금방(늦게)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쳐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金대통령을 하룻동안)못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

▷金대통령=“이렇게 많은 분들이 환영나와 놀라고 감사합니다.평생 북녁 땅을 밟지 못할 줄 알았는데 환영해줘서 감개무량하고 감사합니다.7천만 민족의 대화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날씨도 화창합니다.민족적 경사를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성공을 예언하는 듯 합니다.김정일 위원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마중나온 시민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金위원장=“오늘 아침 비행장에 나가기 전에 TV를 봤습니다.공항을 떠나시는 것을 보고 대구 관제소와 연결하는 것까지 본 뒤에 (순안)비행장으로 갔습니다.아침 (金대통령이)기자회견에서 계란반숙을 절반만 드시고 떠나셨다고 하는데 구경오시는데 아침 식사를 적게 하셨나요.”

▷金대통령=“평양에 오면 식사를 잘 할 줄 알고 그랬습니다.(모두 웃음)”

▷金위원장=“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습니다.외국 수반도 환영하는데요,(우리는)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金대통령의 방북길을 환영 안 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예절을 지킵니다.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金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 나왔습니다.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남쪽에선 광고를 하면 잘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왜 이북에선 TV와 방송에 많이 안 나오고 잠잠 하느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와서 보면 알게됩니다.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방북을 지지하고 환영하는지 똑똑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관들도 金대통령과 동참해 힘든,두려운,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민족입니다.(김용순 위원장을 향해 “오늘 연도에 얼마나 나왔나”고 물었고,김용순 위원장이 “60만명 가량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이에 金위원장은 “나는 40만명 정도되는 것 같던데”라고 했음.)

▷金대통령=“나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습니다.(웃음)金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온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성심을 갖고 있음을 느꼈습니다.그렇게 많은 인파가 나온 줄 몰랐습니다.”

▷金위원장=“그저께 생방송을 통해 연못동에서 초대소까지 (金대통령의)행로를 알려 주니까 여자들이 명절때처럼 고운 옷들을 입고 나왔습니다.6월13일은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된 날입니다.”

▷金대통령=“이제 그런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金위원장=“오후부터는 공식합의된 일정이 진행됩니다.이 백화원 초대소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생전에 이름을 지어준 것인데 백가지 꽃이 피는 장소라는 뜻입니다.한번 산보삼아 둘러 보십시요.주석님께서 생존했다면 주석님이 대통령을 영접하셨을 것입니다.서거 전까지 그게 소원이셨습니다. (94년에)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한다고 했을 때 많이 요구했다고 합니다.유엔에까지 자료를 부탁해 가져왔다는데 그때 김영삼 대통령과 다정다심한 게 있었다면 직통전화 한 통화로 자료를 다 줬을텐데.이번엔 좋은 전례를 남겼습니다.이에 따라 모든 관계를 해결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金대통령=“동감입니다.앞으로는 직접 연락해야지요.”

▷金위원장=“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金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金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입니다.2박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합니다.대답을 주는 사업에 金대통령 뿐 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金대통령의 음식 칭찬과 金위원장의 농담=회담을 마친 金위원장은 金대통령과 공식 수행원들과 “잘 편히 지내시길 바랍니다”라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영빈관을 떠났다.특히 안주섭(安周燮)경호실장과 악수를 하면서 “(金대통령의 신변안전 문제를)걱정하지 마십시요”라고 해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金대통령은 영빈관 식당에서 李여사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메뉴는 평양온반(닭고기 국물에 밥을 말은 평양 전통음식)·쏘가리 튀김·옥돌 불고기·깨즙을 친 닭고기·청포 종합랭채·풋배추김치·설기떡·인삼차 등이었다.金대통령은 “평양온반이 참 맛있다”고 박준영(朴晙瑩)공보수석에게 말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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