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 (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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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45. 탑골의 정객들

탑골을 운영하는 동안 뜨내기 손님들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문화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혀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일부 정치인들은 문화인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김상현.고(故)이수인 의원, 손학규 의원과 5공 실세였던 허문도씨 등이 그런 분들이다.

마당발로 소문난 김상현 전의원은 민예총 관계자들과 많이 왔다. 김용태.여운.김정헌 화백이나 고은.신경림.구중서 선생 등과 같이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상현 의원은 늘 술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끝날 때는 술값도 기분 좋게 계산해주는 멋쟁이었다.

사실 나는 탑골에서 김 전의원을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1년 정도 그의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눈썰미는 참으로 매섭다고 생각했다.

손학규 의원은 1993년 보궐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 후보로 당선된지 얼마 후 지구당 관계자들과 함께 탑골에 들렀는데 거의 자정이 다 돼갈 무렵이었다.

당시만해도 '자정이후 영업금지' 라 곤란했다.

어찌할까 망설였는데 손의원과 친분이 있던 이시영 선생이 특청을 해서 술을 내놓았다.

손의원은 문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문인들 빽으로 술을 마시게 되어서 술맛이 더 좋다" 면서 매우 즐거워했었다.

이수인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후 송기숙.고은 선생 등과 어울려 탑골에 왔는데 술을 아주 즐겼다.

특히 송기숙 선생과는 형제처럼 어울려 인상적이었다. 대구출신이면서 호남에서 당선됐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지역문제를 초월해 우의를 보인 것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며칠전 신문에서 작고기사를 보면서 지역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제일 자주 온데다 강력한 인상을 남긴 이가 바로 허문도씨다. 5공 시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 는 막강한 힘을 가졌던 분으로 알고 있는데 "탑골을 김지하 시인 때문에 알게 되었다" 며 가끔 와서 조용히 술을 마시곤 했다.

주로 방에서 술을 마셨는데 한번은 당시 작가회의 젊은 문인들과 맞닥뜨리는 바람에 적잖은 소란을 빚기도 했다.

5공 청문회가 끝난 한참 후였는데 젊은 문인들은 허씨를 알아보고 "탑골이 어딘데 저런 사람이 와서 술을 마시느냐" 고 항의를 했었다.

허문도씨와 관련돼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간 뒤 홀로 술을 마셨던 날이다.

역사적 평가야 어떻든 본인이 모시던 분이 백담사에 가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회한이랄까 비통함에 잔뜩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사인펜을 달라고 해서 벽에 '월인백담 만파정식(月印百潭 萬波停息)' 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글 아래에 을묘(乙卯)춘(春), 서림(徐林) 이라는 서명도 함께.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른 달은 백담사에 유폐된 주군을 비출 것인 바, 그 달빛을 받으며 주군이 느낄 만가지 생각이나 비통함을 생각할 때 나 또한 천 갈래 만 갈래의 회포에 몸둘 바를 모르겠노라" 는 뜻이라고 어떤 분이 해석해주었다.

뒤에 오신 손님들은 그 글을 읽고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막강한 힘으로 만인 위에 군림하던 사람이 권력의 정상에서 비껴나자마자 백담사로 가고, 그를 따르던 이가 홀로 남아 연모하는 풍경이 '권력무상' 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날 밤늦도록 통음하던 허문도씨의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한복희 (전'탑골'주점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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