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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학생이 보충수업 안 들을 권리 주장하면 어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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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에 대한 두발·복장 규제를 금지하고,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과 같은 교과외 학습에서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조례를 마련해 논란을 빚고 있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회(위원장 곽노현)는 17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 초안’을 발표했다. 조례안 초안은 ▶체벌과 집단 괴롭힘 금지 ▶과도한 휴대전화 규제 금지 ▶머리카락 길이 제한을 포함한 두발 및 복장의 개성 실현 ▶수업시간 외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대체 과목 없이 특정 종교과목 수강 강요 금지 등을 규정했다. 이를 위해 각 학교의 학칙도 개정토록 했다. 조례안에는 제재 조치를 담고 있지 않아 법적 강제성은 없다.

곽 위원장은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을 근거로 초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도교육청은 내년 1∼2월 공청회와 교육감 보고, 도교육위원회와 도의회 의결을 거쳐 3월 새 학기에 맞춰 조례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올 4월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으며, 임기는 내년 6월 말까지다. 하지만 조례가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경기도의회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도의원 116명 중 한나라당 소속은 98명, 민주당 소속은 12명 등이다.

조례안에 대해 학부모·교사·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건국대 오성삼(교육학) 교수는 “조례를 근거로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며 “참는 걸 배우는 것도 교육의 기능인데 교육청이 이를 포기하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상임대표는 “교사들의 지도감독 권한이 떨어진다면 면학 분위기도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양 H중 학부모 이명심(38)씨는 “비싼 옷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빈부 격차가 드러나고 갈등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재 경기도 내 대부분의 중·고교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으며,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귀가 보일 정도의 단정한 머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반면 아주대 오동석(법학전문대학원 헌법) 교수는 “학생 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인권에 대해 자각해야 다른 사람의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 있다”며 “조례 하나로 학교가 하루 아침에 싹 달라지진 않겠지만 작은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학생마다 성격과 스타일이 다 다른데 귀밑 몇 ㎝로 제한해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건 학생 인권침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영진·박수련 기자

◆도교육청 조례 제정 절차=도교육감이나 도교육위원이 발의한다. 도교육청 법제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도교육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밟는다. 이어 도의회에 상정, 의결되면 교육감은 주무 장관에게 보고한 뒤 공포·시행한다. 도의회에서 부결되면 교육감은 20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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