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좋아하는 기업인의 시비 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훌륭한 시인들도 시비를 못 가진 경우가 많은데…. 영광이지만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이광래(70) 우미건설㈜ 회장은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전남 영암군은 최근 월출산 군서면 왕인박사 유적지~문산재 산책로 중간에 이 회장이 쓴 '오솔길'의 시비를 세웠다.

"구림의 오솔길 정다운 길/꼬불꼬불 꼬부랑길/산새 함께 가는 길. 옛 고승 다녔던 길/도갑사에 이르는 길/왕인박사 오고간 길/정취 스며 있는 길. 다시 오고 싶은 길/연인과 같이 거닐고 싶은 길."

이 회장은 1997년 월출산을 오르내리며 쓴 시를 4년 전 나무판에 적어 시상을 얻었던 길 가의 소나무에 달아 놓았다. 등산객들이 이 시를 애송하는 등 반응이 좋자 영암군청이 주민의견을 수렴해 시비를 건립한 것이다. 이 회장은 "여러 차례 산행하면서 느낀 감정을 가다듬어 기교 없이 표현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를 직접 쓰기도 하고 학창시절에 배운 것을 암송하는 것도 즐긴다. 또 좋은 글을 보면 이를 따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 회장은 시뿐 아니라 이웃사랑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5월 '68살 장애인 딸을 돌보며 사는 101살 엄마'이야기가 중앙일보에 보도됐을 때 모녀가 사는 영구 임대아파트를 리모델링해주고 냉장고.TV 등 살림살이도 새것으로 바꿔줬다.

그는 현재 청렴한 공직자를 위한 복지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부정부패가 없어져야 사회 발전이 되고, 공직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소신껏 일할 수 없다"며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기금의 재단을 몇 년 안에 발족, 필요한 사람에게는 노후가 보장되도록 수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1986년 광주에서 아파트 건설업을 시작한 그는 전국에 1만5000여가구를 지었으며, 현재 15곳에 6300여가구를 건설 중이다. 99년에는 사재 87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회사에 내놓기도 했다. 18년 동안 협력업체에 대금 결제를 하루도 미룬 적이 없으며, 회사 재무상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광주=이해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