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004년 9월 민심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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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담하다. 취임 첫해인 지난해보다 낮은 점수를 줬다. 잘한다는 응답은 9.3%에 불과했고, 못한다는 답변이 54.6%에 달했다. 노 대통령이 잘한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려 40개 항목을 열거했지만 48%의 응답자가 '없다'를 선택했다. 또 시국이 불안하다는 응답이 78%로,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이면서 대선이 있었던 2002년의 65%보다 훨씬 높다. 중앙일보 창간 39주년 기념 여론조사에 나타난 2004년 9월 민심의 현주소다.

이런 조사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자명하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불안감도 훨씬 커졌다는 뜻이다. 특히 절반 가까운 국민이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단 하나도 잘한 게 없다고 차디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 정권은 이를 비상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 지지도를 보라. 열린우리당이 23.2%, 한나라당은 29.6%였다. 정당 지지도는 바뀔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는 40대가 대선.총선 때와는 달리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40대의 지지도는 열린우리당 20%, 한나라당 37%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노 대통령이 잘못한 일로 물가불안.경제악화.실업 등 경제문제가 1, 2, 3위로 꼽혔다. 노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4위, 행정수도 이전이 5위였다. 시급한 당면과제도 경제악화와 실업, 물가 불안이 1, 2, 3위였다. 국민은 '이래서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년 후의 경제상황에 대해 나아질 것(14%)이란 기대보다 어려워질 것(42%)이라고 비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희망이 없으면 현재의 고통을 견디기 힘든 법이다.

노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에 동행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여러 과제가 있지만 먹고사는 게 첫째" "외국에 나와 보니 기업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그런 인식을 했다면 다행이다. 이번에는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