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경계해야 할 '반수입'정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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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순(純)국산 비빔밥 7천원:국산 쌀밥, 한우 볶음, 국산참깨 기름, 국산도라지…. "

"반(半)국산 비빔밥 6천원:국산 쌀밥, 미국쇠고기 볶음, 중국산참깨 기름, 국산도라지…. "

"순(純)외국산 비빔밥 5천원:태국산 쌀밥, 미국쇠고기 볶음, 중국산참깨 기름, 중국산 도라지…. "

정부 생각대로라면 조만간 등장함직한 식당 메뉴다. 농림부가 음식점이 사용하는 쇠고기가 수입쇠고기인지 한우인지를 가격표에 표시토록 하겠다는 모양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개방적 신(新)통상국가론' 을 음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이는 발상이다. 그 발상이 수입품과 국산품의 동등대우를 원칙으로 하는 국제무역규범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이 반(反)수입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일까 두렵다.

경기호조 때문인지 지난해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국제수지 흑자 기조가 드디어 4월에 적자를 기록했다. 30개월 만의 일이고 또 초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핵심적 요인이 국제수지 흑자였다는 점에서 최근 일고 있는 불안감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불안감이 반수입적 정서나 정책발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으로 예정된 외환거래 완전자유화를 일부 유보할 것 같은 움직임이나, 재고를 한다지만 고급차 보유자에 대한 세정 강화 방침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경제위기론과 반수입적 발상의 논리적 연결고리는 "이대로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신인도가 다시 추락한다" 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우리가 지난 두해반 동안 국제수지흑자 행진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입규제 때문이 아니었다. 수입시장은 경제위기 전에 비해 거의 완벽하게 열린 상태였다.

국제수지 흑자는 기업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저임금에 대한 근로자들의 이해, 그리고 정부의 물가와 금리안정 노력이 어우러져 일궈낸 것이다.

한국의 대외신뢰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걱정하는 것은 국제수지흑자 감소가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수지 악화가 우리 속에 잠자던 반수입적 정서를 일깨워 보호주의가 재등장하고 구조개혁이 중도하차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난 경제위기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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