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매향리' 열흘 조사로 끝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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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매향리 미 공군 폭격훈련장 주민피해에 관한 한.미 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은 현지주민과 사태를 관심갖고 지켜본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미군측은 어차피 소극적이게 마련이라 치더라도, 국방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듯하다.

조사결과는 '직접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 '향후 피해보상을 청구하면 적법절차에 의거해 처리하겠다' 는 단 두 마디로 요약되는데 이런 해명으로 반세기 가까이 누적된 매향리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한 조사참가자가 지적한 것처럼 불과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에 3천4백59건의 피해신고 사례를 조사해 '이상 무' 를 선언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근본적인 사태해결 의지가 결여된 면피주의.생색내기 발표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물론 국방부나 미군측에도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매향리만한 천혜(天惠)의 사격장이 드문데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똑같은 주민 반발이 예상되고, 1997년 매향리 주민들이 안전지역 이주에 합의하고도 일부 주민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 경위가 있다.

군 입장에서는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인데 일부 시민단체가 나서서 사태를 키운다고 보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단기간의 어설픈 조사로 사태를 미봉하려 해서는 문제가 더욱 확대될 뿐이다. 매향리 문제는 안보와 국민의 생활권을 동시에 풀어야할 중요하고도 민감한 사안이다.

국방부가 향후 대안으로 내놓은 '적법절차' 란 것은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규정된 배상심의위원회나 법원 판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매향리 문제를 다루는 수원지구 배상심의위원회가 주민 피해를 인정한 경우는 67년 미군의 오폭(誤爆)으로 발생한 주민 2명의 사망.부상사고 딱 한 건뿐인데 과연 주민들이 신뢰하고 납득할지 의문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방침도 피해입증 책임을 주민에게 미루고 행정부의 역할은 포기 또는 회피하겠다는 자세로 볼 수밖에 없다.

매향리 사태는 미군기지 문제가 단순한 안보차원을 넘어 주민들의 생활.환경.재산권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국방부만이 아니라 정부 관련부처들도 함께 나서서 직.간접적인 피해실태를 상세히 파악하고, 주민이주든 사격장 이전이든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미군사격장뿐 아니라 국내의 수많은 군사격장들에 대해서도 환경오염.소음피해 등 주민과 생태계에의 영향을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보기에 매향리 사태는 정부의 해결의지가 관건이다. 몇 개의 수치만 발표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불신과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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