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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수사 때 무슨 일이 … “녹화 잘못됐다며 피해 아동에 네 번 진술시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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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한변협은 “검찰 등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아 또 다른 피해를 유발시켰다”며 15일 그동안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검찰은 대한변협의 발표 내용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올 1월 6일 오후 6시 경기도 안산시의 한 병원 앞. 진눈깨비가 날리는 가운데 여덟 살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30여 분간 추위에 떨며 택시를 기다렸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조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소녀는 한 달 전 등굣길에 조두순에게 성폭행을 당한 ‘나영이’(가명)였다. 30분 넘게 택시를 기다리다 지친 두 사람은 결국 병실로 되돌아갔다.


조두순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 어린이가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보낸 시간은 또 다른 ‘악몽’이었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 아동을 보살피는, 따뜻한 손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한변협이 15일 발표한 ‘조두순 사건’ 진상조사 결과에는 피해 아동이 겪었다는 ‘2차 피해’ 내용이 담겨 있다. 변협은 검찰이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 횟수를 최소한으로 하라는 성폭력법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 아동은 택시를 타지 못해 출석을 포기한 다음 날인 1월 7일 안산지청에 갔다. 그런데 이날 영상 녹화를 위한 진술을 네 차례나 해야 했다고 변협은 밝혔다.

한 번은 녹화 기기 조작 미숙 등으로 15분간의 진술이 녹화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음성이 녹음되지 않았으며, 세 번째는 소리가 너무 작게 녹화됐다는 것이다. 피해 아동이 지치자 검찰은 영상 기기 담당자를 급히 수소문해 네 번째 녹화를 했다는 게 변협의 주장이다. 피해 아동의 주치의인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 신의진(소아정신과) 교수가 지난 10월 본지 인터뷰에서 “피해 어린이에게 수차례 진술을 요구한 검찰도, 조사를 받게 한 의사도 문제가 많다”고 분노를 터뜨렸던 대목이다. <본지 10월 31일자 1면>

변협은 또 “경찰이 조두순을 검거한 직후 촬영한 영상 자료를 담은 CD가 중요한 증거로 쓰일 수 있음에도 검찰은 항소심 선고 전날에야 이를 제출했다”고 했다. 당시 조가 “평소 흰머리에 안경을 착용한다”며 자신은 피해 아동이 진술한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뒤늦게 냈다는 것이다. 변협은 “이 때문에 조의 변호인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피해 아동을 상대로 범인의 인상 착의를 추궁했다”며 “피해자에게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등 심적 고통을 주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변협 발표에 대해 검찰은 “주장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해 아동의 영상 녹화와 관련, “조두순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확인이 필요했다”며 "당시 병원으로 관용차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피해 아동의 외출 절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조사가 다음날로 미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의 목소리가 작게 녹음돼 양해를 구하고 재녹화에 대한 동의를 받았으며 피해자를 상대로 네 차례 녹화를 반복한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CD 제출에 대해서는 “이미 녹화 당시 작성된, 동일한 내용의 피의자 진술조서가 법원에 제출됐고, 유·무죄가 달라지는 사안도 아니었다”며 “법원이 변호인 측의 증인 신청을 받아들이자 공소 유지를 위해 추가로 자료를 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신의진 교수는 “수사 자료 제출 과정 등에서 검찰의 성의가 부족해 피해 아동이 더 많은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아동 성폭행 피해자 조사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승현·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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