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바람몰이식 매도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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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386세대 국회의원들, 장원 전 총선연대 대변인, 문용린 교육부 장관 등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음주, 성추문 사건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돼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시민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로서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장차 닥칠 어려움 때문에 앞이 캄캄하다. 시시비비가 좀 더 가려져야 하겠지만 이들의 엄청난 잘못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과거 운동단체나 시민단체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며, 더욱이 지나치게 주목을 받아왔던 시민운동, 비정부기구(NGO) 담론에도 거품이 빠져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바람몰이식의 매도는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필자는 냉정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사실 사회운동가라고 해서 음주문화나 여성문제에 대해 훨씬 더 진보적이지도 않으며, 더 개혁적이지 않다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70,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90년대의 시민운동은 독재정권.부정부패를 비판하는 데는 앞장섰으나 '문화와 일상의 민주화' 에 관한 한 낙제점수를 받을 수준이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모든 문제에 대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말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우리사회의 이중적인 성문화, 향락주의로부터는 사실 누구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이들 역시 엄격한 도덕적 자각 없이 타성적으로 행동하는 가운데 그러한 큰 잘못을 범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가 이제 사회의 주목도 받고 권력에도 접근하게 되어 '도덕 불감증' 의 음주.향락.성문화에 흡수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매도가 우리사회의 '왕따 문화' 와 맞물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아직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상황에 있는 시민운동을 위축시켜 총선연대 활동이나 시민운동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수구세력을 더욱 기세등등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왕따문화' 는 집단적 콤플렉스의 반영인데 과거의 '빨갱이 사냥' 이 그러했듯이 소수의 '튀는 사람' 을 끌어내 매장시킴으로써 다수자가 자신의 부도덕성과 약점을 은폐하는, 청산해야 할 집단심리다.

정치가를 무조건적으로 매도하는 우리 국민의 집단심리가 참여와 문제제기를 통해 정치가의 옥석을 가려내는 일을 등한시하면서 정치적 '허무주의' 만을 만연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잘못은 분명히 비판받고 엄하게 추궁돼야 하나, 그들을 비판하는 분노와 정열의 반은 만연한 부정부패와 일확천금 신화의 산물인 '접대문화' , 한국인의 전형적인 이중성을 잘 보여주는 '성 의식' 등에 돌려야 문제해결의 길이 보일 것이다.

언론의 균형감각도 필요하다. 총선때 모든 언론이 다투어 386세대를 부각시킬 때 필자는 어떤 TV 특집프로에서 정치권에 진출한 386세대를 강하게 비판했으나 실제 방영에서는 완전히 삭제돼 씁쓸한 기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시민단체를 크게 부각시킨 것도 언론이므로 언론은 시민단체에 대한 감시역할을 더 충실하게 했어야 했고 또 이번 사태를 시민사회운동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압도적 다수의 시민운동가는 여자가 술시중 드는 호화판 술집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시민' 들의 무관심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민운동가는 아직 우리사회의 지도자도, 기득권층도 아니다.

그리고 386세대 정치가들 역시 구 정치가들에 비해서는 아직은 개혁적이다. 이들이 장차 어떻게 되는가는 이들 개인의 결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책임있고 균형있는 비판, 인내하고 직접 참여하면서 비판하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에 달려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참여연대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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