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73년 만든 법이 21세기 한국 의료 규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10일 오후 인천광역시청 브리핑 룸. 안상수 시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많은 노력 끝에 외국병원 유치 결실을 보게 됐다”고 밝혔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서울대병원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병원을 짓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안 시장의 기대와 달리 병원 설립까지는 험난한 여정을 가야 한다. 관련 법률(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는데 지난해 11월 이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야당의원뿐만 아니라 일부 여당의원도 반대하고 있어서다. 송도 병원 사업은 이번이 재수(再修)다. 2005년 미국 뉴욕장로병원(NYP)이 들어오려 했으나 법규가 마련되지 않아 결렬됐다. 이번에도 법률이 처리되지 않으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투자개방형 병원’ 정책이 6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2003년 인천 송도에 세우기로 했으나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도 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역시 ‘제주특별자치법 개정-국회 통과’의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병원 설립이 두 곳에서 막혀 있다 보니 다른 지역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인제대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은 “의료산업 선진화 정책이 현 정부 들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 이전 정부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반대=투자개방형 병원을 비롯한 의료산업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동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초 복지부 업무보고 때 “병원 산업을 육성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의료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 2년여간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첨단복합단지 조성 등을 논의했다. 현 정부 들어 2008년 초 인수위원회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검토를 추진과제에 포함했다. 하지만 지난해 촛불 시위 때 ‘의료민영화’로 몰리면서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반대의 진원지는 보건복지가족부다. 전재희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의 부작용 보완책이 확실하지 않으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왜 투자개방형 병원인가=의과대학에는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간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의예과의 2010학년도 정시 예상 점수가 가장 높다. 이런 현상은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한국 의료도 세계 수준이다. 간 이식, 위암 수술, 척추 수술, 성형과 피부 치료 등은 선진국을 능가한다.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하려는 것은 이러한 우수 자원을 이용해 새 시장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최상목 미래전략정책관은 “의료를 중심으로 맞춤의학, 언제 어디서든 의료서비스를 받는 유비쿼터스 헬스, 의료관광, 바이오 산업, 건강관리서비스 등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그러려면 자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의사 돈이 아니면 병원에 투자할 수 없다. 장비와 시설에 투자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길이 막혀 있다.

대외법률사무소 김선욱 변호사는 “1973년 현행 의료법의 틀이 만들어지기 전에 영리의료법인 제도가 있었다”며 “투자개방형 병원이 일부 생기더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유지한다면 의료 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정책위원장은 “투자개방형 병원의 경제적 효과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병원들도 시설 고급화 등으로 투자개방형 병원의 행태를 따라갈 가능성이 커 결국 국민 의료비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별취재팀=신성식·안혜리·강기헌 기자, 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

◆투자개방형 병원=병원은 학교법인(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법인(서울아산·삼성서울), 의료법인(미즈메디병원), 국공립병원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비영리 기관이라 외부에서 투자할 수 없다. 80%가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 이들 병원에 외부 자본이 투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면 투자개방형 병원이 된다. 이들 외에 개인병원과 동네의원이 있는데 영리 기관이지만 주식회사 병원 전환은 금지돼 있다. 개인병원이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