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타협해선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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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30면

새해 예산안을 짜는 일은 어쩌면 회사 경영에 있어서 가장 쓸모 없는 관행 중의 하나입니다. 예산을 잘못 짜서 때로는 사업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회사 성장을 저해하며,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사업이 잘되는 건, 예산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인 경우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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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대부분 기업이 전략을 세울 때와 마찬가지로 예산 편성에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이 무슨 낭비입니까. 기업들은 예산 편성 과정을 아주 중요한 경영 활동으로 취급하죠. 물론 예산을 잘 짜서 기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산을 어떻게 잘 짜느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두 가지 나쁜 관행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먼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태도입니다. 예산 편성을 위해서 수개월에 걸쳐 직원들과 경영진이 회의를 합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직원들은 한 가지 대전제를 바탕에 깔고 회의에 임하죠. 위험은 최소화하고 보상은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곧 달성 가능한 목표치를 정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합니다. 왜냐고요? 모든 회사가 예산에 맞춰 사업을 진행했을 때 보상을 하기 때문이죠. 예산을 초과하면 제재를 가합니다. 경영진은 정반대 입장입니다. 그들은 회사가 성장해야 보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매출과 이익을 늘릴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려고 하죠.

회의를 통해 예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을 만한 데이터를 제시합니다. 양쪽이 차이를 좁혀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예산을 확정하죠. 다들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산안을 짜는 데 토론은 전혀 없고 타협만 있는 상황 말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몇 주에 걸쳐 예산안을 치밀하게 짭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담대한 계획을 세우죠. 제대로 투자만 해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홍길동 팀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홍 팀장은 경영진에게 예산만 주어진다면 어떻게 M&A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는 박수 갈채가 쏟아지죠. 그렇지만 그뿐입니다. 회의 말미에 결국 홍 팀장은 잘해야 자신이 요청한 예산의 절반이나 받을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홍 팀장이 얼마나 프레젠테이션을 잘했건 관계없이 이미 경영진 간에는 새해 예산안에 대한 합의가 다 이뤄졌죠. 그는 절반이 뚝 떨어져 나간 예산을 받아 들고 애초 시도한 M&A가 아니라 자잘한 신사업 한두 개에 돈을 써 버립니다. 경영진 앞에서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의 흥분은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죠.

두 번째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예산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배정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거죠. 경영진끼리 모여 비밀리에 결정해 버리고 통보하는 식입니다. 직원들이 예산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가짜 미소를 짓는 거죠. 매년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산을 짜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 돼야 합니다. 새해 예산을 짜면서 경영진과 목표를 공유하고, 성장 동력을 발굴하며, 회사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래서 예산안을 짤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어떻게 예산안을 짜면 지난해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경쟁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이들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예산 편성 과정은 현장 직원들과 경영진 간에 회사의 성장을 놓고 고민하는 진솔한 대화의 장입니다.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함께 성장 시나리오를 고민해 보는 것이죠. 대강 타협하거나 윗사람들끼리 비밀리에 결정한 예산안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예산안이 돼야 합니다. 또 외부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바뀔 수도 있어야 하고요.

그렇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요. 포기하지 마세요. 예산을 짜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당신이 먼저 문제를 제기해 보세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예산 편성에 관한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입니다. 잘 짜인 예산은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예산을 짰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고 답할 겁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 변화를 당신이 먼저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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