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의 윤리] 2.깊이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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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약과 독은 흔히 '종이 한장 차이' '동전의 양면' 으로 비유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용량이나 대상을 잘못 고를 경우 독이 될 수 있고 무슨 약이든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식품이 '약' 인지 '독' 인지도 단순 공식으로는 풀기 어려워 앞으로도 유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사카린이나 화학조미료(MSG) 유해 논쟁에서 보듯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다 결국은 '판정불가' 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유전자변형식품의 유해 논쟁은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파장을 부를 게 뻔한데다 유럽.일본의 '유해론' , 미국의 '무해론' 등 국가의 자존심 대결까지 끼어들어 결론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해로 결론날 경우 미국의 과학.기술계가 크게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독성물질을 수출했다는 국제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고 무해로 판정되면 작물 수입국가들이 근거없는 유해설을 퍼뜨려 무역장벽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

생명공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전자변형식품이 유해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 자체가 억울한 일일 것이다.

'녹색혁명의 총아' . '인간을 기아에서 해방시켜줄 신기술' 로 찬양됐다가 첫 성과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프랑켄슈타인식품 제조기술' 로 평가절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변형식품은 과거부터 섭취해온 식품이 아닌데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사전 독성실험이 사실상 불가능해 유해성은 물론 윤리성 논란이 예고돼 있었다.

그동안 유전자변형식품이 독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여럿 제시됐지만 실험용 쥐나 세포차원의 실험이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반대로 인간에게 무해하다는 딱 떨어지는 증거도 없는 상태다.

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작물 생산국인 미국은 그동안 식품의약국(FDA) 등 세계적 권위기관을 내세워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을 홍보해왔다. '식품위생 선진국인 우리도 먹는다' 는 논리로 우리나라 소비자단체들과 유럽.일본 등의 수입거부 움직임에 맞섰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미국의 소비자들 가운데서도 우려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올해 1월 미국 식품마케팅협회(FMI)가 소비자에게 '유전자변형식품을 거리낌없이 사겠느냐' 고 물은 결과 63%가 구입의사를 밝혀 4년 전의 77%를 크게 밑돌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해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본의 아니게 소비자들이 '인간 기니픽' (실험동물)이 돼 있는 것이 현주소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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