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불법선거운동 폭로·협박 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불법선거운동과 관련, 폭로.협박이 난무하는 것은 선거기간 중 지속됐던 후보와 선거 운동원간의 공생관계가 틀어진 데서 출발한다.

선거기간 중 당선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행한 불법선거운동이 당선자에겐 약점으로, 운동원들에겐 '한몫' 으로 작용한 결과다.

선관위의 실사(實査)가 본격 진행될수록 협박 강도가 세지고 빈도도 잦아지리란 전망. 이처럼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협박과 거래는 물밑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 하지만 불법선거의 꼬리가 잡힐까 사직당국에 신고도 못한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 금품요구〓한나라당의 수도권 당선자 P씨는 선거 때 자신의 편에 섰던 지역내 '××재활단체' 직원들이 찾아와 손을 벌리는 통에 죽을 맛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무실에 찾아와 "기부금을 내지 않으면 불법선거운동을 문제삼겠다" 고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얼마전 수도권 민주당 L씨의 지구당 사무실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내돈 내놓으라" 며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렸다.

수도권의 한나라당 L당선자도 선거과정에서부터 돈이 적다고 불평했던 동 협의회장들로부터 선거가 끝난 뒤에도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는 운동원의 양심선언을 둘러싸고 당선.낙선후보들간에 입씨름이 계속되고 있다.

선거기간 중 당선자측으로 부터 금품을 받았다고 폭로한 운동원이 최근 "후보측에서 받은 금품은 빌린 것일 뿐 선거와는 무관하다" 고 말을 바꾼 것. 이에 대해 낙선후보측은 "당선자측이 3천만원을 주기로 하고 운동원의 입을 막았다" 며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도권 민주당 후보의 한 운동원은 최근 평소 알고 지내던 한나라당 관계자를 찾아가 "불법선거 폭로로 한몫 챙기자" 며 동업(□)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 자리보장 요구〓수도권의 민주당 P씨는 한자리가 늘어난 4급 보좌관 직책을 보장하라는 운동원의 요구에 정신이 없다.

선거구 내 특정 소지역 출신인 운동원들은 "선거 때 약속했던 보좌관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불법선거 내역을 폭로하겠다" 며 실제로 상대방 후보의 사무실을 기웃거려 P씨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방에서 당선된 민주당 L씨의 경우 자신의 측근에게 지방선거 후보공천을 약속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바람에 불법선거 폭로협박에 시달리는 케이스. 해당지역구엔 이미 "L씨가 수억원을 풀어 사건의 무마를 시도하고 있다" 는 소문이 파다하다.

수도권의 한나라당 당선자 S씨는 "대부분의 당선자들이 선거운동원이나 자녀들의 취업보장 요구 등 평균 10건 이상의 협박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고 말했다.

◇ 당선자측의 대응〓선관위가 엄격한 현장실사를 벼르고 있고, 검찰도 강도높은 선거수사를 천명하고 있어 당선자들로서는 어떤식으로든 운동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선자들로선 아무리 작은 잡음이라도 불법선거의 꼬리가 밟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나는 10월까지는 일단 잡음을 없애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박에 시달리는 당선자들은 지구당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부인의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잠행(潛行)하거나 자신의 보좌관들을 지구당에 상주시켜 운동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소문이다.

기획취재팀〓서승욱.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