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기술교 '제자 사랑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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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불우한 제자들을 앞에 두고 대접받는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청암고등기술학교의 추상욱(秋相煜)교장은 15년째 스승의 날(15일) 잔칫상을 마다하고 있다.

대신 이날을 '제자 사랑의 날' 로 바꿔 제자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베푸는 날로 운영하고 있다.

학력을 인정받는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고 직업학교여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이 많은 것이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학교 학생은 모두 1백4명이고 이들중 소년소녀가장과 장애인이 15%나 된다.

교사들은 이날 학생들에게 학용품 등 선물을 주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역할을 바꾼 연극을 하면서 학생들 곁으로 한발 더 다가선다.

음식을 같이 먹으며 속깊은 얘기를 털어놓다 보면 눈물을 훔치는 학생들도 있다는 게 교사들의 얘기다.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도 돕고 나섰다.

학교 인근 중계주공아파트 5단지의 부녀회가 3년 전부터 음식을 장만해 '제자 사랑의 날' 에 학교를 찾고 있는 것.

부녀회의 윤말례(尹末禮.49)회장은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학교 주변 식당에서 학생들에게 점심을 사준다는 얘기를 듣고 작은 정성을 모았다" 고 말했다. 尹씨와 부녀회원들은 15일 떡을 만들어 하나하나 봉지에 담아 학생들의 손에 쥐어줄 생각이다.

선생님들과 주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고맙게 받은 학생들의 선생님 사랑도 애틋하다. 1998년 이 학교를 졸업한 이종수(李宗樹.22)씨는 "특별했던 스승의 날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며 "그때의 기억이 늘 힘이 된다" 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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