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통치사료 재정비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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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와대 온실 지하에 1백20평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통유리창으로 겨우 햇빛을 볼 수 있는 이곳을 여직원 한명이 지키고 있다.

소장도서가 3만권 정도라지만 비밀자료나 대외비자료는 없다. 정부간행물, 대통령의 해외순방 화보집, 연설문집이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곳에 박정희(朴正熙)시대의 초기 국정일지가 먼지 쌓인 낡은 종이뭉치로 방치돼 있었다. 11일 청와대가 공개한 14권짜리의 그 자료를 누구도 뒤져보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 2월 청와대 통치사료비서팀은 자료 전산화과정에서 이 자료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현대사 학계에 사료적 검증을 의뢰했다.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계 판정은 '집권세력 입장에서 기록한 유일한 필사본' 이었다. 정은성 통치사료비서관은 "그렇게 귀한 자료가 30여년간 방치됐다는 것을 알고 놀랐고, 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은 통치사료의 중요성을 알고 별도의 비서관까지 임명했다. 심지어 술자리까지 배석시키며 기록토록 했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를 내세웠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의 통치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승만(李承晩)전 대통령은 4월 혁명으로 물러나면서 대부분의 기록을 사저(私邸)인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겨갔다. 그 뒤 연세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12.12쿠데타, 광주민주항쟁 등 격변기의 최규하(崔圭夏)전 대통령이나 全전대통령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IMF환란' 에 이르는 정책결정 과정도 전혀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부분 폐기하거나 사저로 가져갔다" 고 말했다.

남아 있는 노태우(盧泰愚).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도 공개행사와 연설문 등 대부분 신문에 보도된 내용뿐이다. YS정권 시절에 통치사료 담당자들은 공식행사에만 배석해 '통치의 실감나고 진솔한 대화' 는 기록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회고다.

통치사료는 통치자 개인의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 때의 실록(實錄)정신은 사관(史官)의 공간을 철저히 보호했다.

3공 시절 국정일지 발견을 계기로 정부는 역대 대통령의 자료들을 돌려받는 등 통치사료 재정비에 본격 나서야 한다.

김진국 기자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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