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8학년 새 대입제도 문제점] "지원자 절반이 전과목 '수'…학생부 못 믿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현행 대입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직후부터다. 새 대입제도는 수능시험 비중을 확 줄이는 대신 학생부(내신) 위주로 선발하는 게 골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선 대학들이 고교 내신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 고교 등급제, 고교 간 학력 격차 문제가 새삼 도마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중앙일보는 17일 서울지역 4개 사립대 입학처장들을 초빙해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워낙 민감한 현안이 많은 점을 감안, 활발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발언 내용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 사립대 입학처장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중앙대 이용구 처장, 경희대 이기태 처장, 한양대 최재훈 실장, 성균관대 현선해 처장. 변선구 기자

◆ 사회=새 대입안에 대한 대학의 입장은.

▶ 제7차 교육과정이 제대로 시행되기 전에 개선안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수능 등급제 등에 대해선 처음엔 당황했다. 반면 활용가치가 없던 학생부의 변별력을 높이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이나 대학이 다양한 전형요소를 활용해 입학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시행시기가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 없이 개선안이 나왔다. 학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대입제도만 개선하는 건 문제다. 학생들을 큰 덩어리로 묶어 구분하면 결국 대학이 준비가 안 된 아이들을 뽑아 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대학에서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 전반적인 흐름에서 개선안을 지지한다. 각론에서는 보완할 점이 있다. 현재 내신성적은 믿을 수 없다. 변별력이 없어 학생 개개인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전교조가 특정 대학을 찍어 고교 등급제를 문제 삼고 있는데 먼저 고교에서 내신성적의 신뢰성을 쌓기 위해 노력했는가를 따져야 한다.

◆ 사회=수능 등급을 매기면 변별력이 떨어져 수능이 자격고사로 전락한다는 우려가 있는데.

▶ 수능은 자격 기준밖에 안 될 것이다. 지금도 수능은 몇 개 영역에서 몇 등급 이내, 이런 식으로 최저 학력 기준으로 적용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등급이 달라지면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진다.

▶ 등급으로 되면 결국 엇비슷한 아이들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전형요소의 기능을 상실한다.

◆ 사회=개선안에서 학생부의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평어(수.우.미.양.가) 등을 없애겠다고 했다. 그래도 학교 간 학력 차는 반영하지 못할 텐데.

▶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활용하는 자료는 다양하다. 이를 어떻게 반영해 우수한 인재를 발굴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학의 몫이다. 대학이 고교의 교육과정을 평가해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 따라 심화과목을 많이 듣는 경우도 있고, 기초과목만 배우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 이런 것을 반영한다고 말하면 고교 등급제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다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 고교 등급제는 말이 안 된다. 대학은 개인 간의 학력 차를 본다. 과학고의 꼴찌에 가까운 학생과 평준화 학교의 1등 학생 중 누구를 뽑겠나. 1등을 뽑는다. 그런데 마치 과학고 학생을 뽑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리도 없다. 개인의 학력 차나 특성에 따른 차이를 따질 뿐이다.

◆ 사회=미국 대학은 고교의 교육프로그램을 평가해 반영하지만 고교 등급제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대학에서 이를 시행한다면 고교 등급제라는 비난을 듣게 되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가.

▶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이 한 방안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1년 내내 입시작업을 한다. 우리 학교 입학정원의 5배수 정도의 서류를 받아 1년 동안 한다고 계산해 보니 11명이 하루 8시간, 250일 동안 해야 할 수 있더라.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전문가가 해야 하는데 이들을 언제 육성할 것이며 대학이 이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 입학사정관제가 악용되면 학생의 자질을 판단할 때 기계적으로 될 수 있다. 자칫하면 정성적인 평가 부분이 무시될 수 있다.

▶ 고교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선 개별 고교에 자율성이 있어야 한다. 고교가 나름대로 교육 방향을 정하고 자율성을 가져야 수준별 수업 등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고교 특성화도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대학이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 사회=최근 전교조가 연세대의 고교 등급제 적용 의혹을 제기했다.

▶ 전교조 자료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대학마다 위치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고 어떤 방식으로 선발하는가는 다를 수 있다. 연세대는 자체 기준에 맞는 선발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고교 내신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대학의 자율적 선발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또한 전교조가 강남과 비강남을 비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 전교조는 내신 만점을 60점으로 반영할 때 석차백분율 90%는 54점, 80%는 48점으로 환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대학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대학은 자체 환산 공식이 있다.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일부 교과 과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수시 1학기 한 모집계열에서 11명을 선발했다. 1차에서 10배수인 110명을 선발하기로 했는데 776명 중 425명이 전형에서 반영하는 전과목 '수'를 받아왔다. 어쩔 수 없이 1차에서 425명을 뽑았다. 이게 현재 학생부 교과 성적의 현실이다. 왜 학생부 반영비율이 낮은지 반성해 봐야 한다.

◆ 사회=대학이 논술과 심층면접을 강화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 교수들은 신입생들의 학력 저하에 몸서리친다. 그렇다 보니 주관적인 전형요소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교육부가 7차 교육과정 취지에 맞춰 고교에서 심층면접이나 논술 등의 교과 과정을 운영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학생부나 수상실적 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논술과 면접 등은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카드다. 우수한 학생을 발굴하기 위해서 내가 쥔 카드를 연구하고 개발해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 고교는 대학이 인성이나 정상적인 교육 과정과 관련된 수행평가 등을 봐주기를 요구한다. 심층 면접이나 논술은 객관적인 점수를 보기 위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내면적으로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 사회=새 대입안에 따르면 대학마다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부담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 대학마다 논술이나 구술면접이 다르다는 것은 선입견이다. 대학이 평가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과정론과 관련된 부분이다. 논리적 전개 능력 등을 보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주제가 나와도 다 할 수 있다.

▶ 학생들이 가려는 대학의 순위는 대략 정해져 있다. 새로운 개선안이 시행되면 사교육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등급이 떨어지면 안 되니 수능도 소홀히 할 수 없고, 학생부 성적을 관리하기 위한 사교육도 늘어날 것이다. 수상 실적도 올려야 하니 과외도 받아야 하고 논술과 면접 준비도 해야 한다. 사교육 부분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 사회=궁극적으로 신입생 선발은 어떻게 해야 하나.

▶ 각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어떤 전형 과정을 통해 들어온, 어떤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은지 등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고민하기 때문에 자율적인 전형요소를 인정해줘야 한다. 학생 선발은 대학의 고유 권한이다.

▶ 모집시기 등도 정해져 있다. 대학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 대학이 부정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겠나. 모집 시기나 선발 방법 등을 대학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 좋다.

▶ 교육부에서는 삼불(三不).삼금(三禁) 등을 이야기한다. 물론 대입 등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에만 맡기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대학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살리려면 이러한 부분에 관여하면 안 된다. 대학 편의주의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대학은 많이 고심하고 이런 것, 저런 것 다해본다.

▶ 새로운 대입안은 고교 교육 정상화를 내세우고 있다. 마치 고교 교육의 파행 책임이 대학에 있는 것처럼 몰고 가는데 고교 평준화 30년에 대해 양심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부분을 과감하게 인정했으면 한다.

정리=이승녕.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 토론 참석자
▶토론자=이기태 경희대 입학관리처장, 이용구 중앙대 입학처장, 최재훈 한양대 입학관리실장, 현선해 성균관대 입학처장

▶사회=김남중 정책기획부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