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느닷없는 대북비료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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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갑자기 북한에 비료 20만t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밝혔듯 북한당국의 공식적 비료 지원 요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민간단체를 통해 비공식 의사표시가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느닷없는 지원배경이 더 궁금해진다.

통일부 관계자는 '인도적.동포애적' 차원에서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며 북한의 농사철에 맞춰 지금 주기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8일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실무합의서를 조인키로 한 회의를 앞두고 있어 그 시점에 의구심을 느끼는 이들이 없지 않다.

지난해 대북비료지원 결정은 차관급회의를 거쳐 이산가족을 상봉키로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지 못하자 지원을 중단했었다.

이제 와서 비료지원을 재개하려 한다면 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인도적.동포애적 지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20만t 비료 지원에 드는 총경비가 6백40억원이라면 적지 않은 자금이다.

산불 이재민 지원성금을 모금하는 판에 그같은 자금을 동원하려면 당연히 사전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 설명이 없으니까 그동안 북측이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해 보이라고 주장해온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은지, 3일 조인키로 했던 합의서가 늦춰진 것이 우리측의 이른바 '실천' 이 지연된 것과 관련이 없는지, 비료 외에 다른 지원계획이 없다는 게 사실인지 구구한 추측이 일지 않는가.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키 위해 비료를 지원한다면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 합의과정에서 '이면합의' 가 없어야 하며, 또 그것으로 발목 잡혀 대북문제를 자의적으로 끌고가려고 하거나 특히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켜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북정상회담 문제는 여야가 함께 협의키로 모처럼 합의한 사항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협의하는 노력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또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사용한다 해도 국민에게 충실히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북측을 지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주선하고 또 국내 기업에도 대북경협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정보의 공유 속에 국민적 합의를 얻어 진행돼야 한다.

북측도 우리 정부의 이같은 노력을 이해하고 상응하는 성의와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측은 대북지원에 관한 한 무슨 '밀약' 이나 있는 것처럼 어물쩍 넘어가는 자세를 취해선 안된다.

맺고 끊는 분명함과 투명한 정책 추진을 해야 국민적 신뢰를 얻는 남북회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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