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 정치인들은 해외공관 접대 안 받겠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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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의원 등 본국에서 온 정치인들을 접대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외교관들의 공통된 관행이다. 공관에 배정된 외교 활동비의 적지 않은 부분이 주재국을 방문한 주요 인사 접대비로 사용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 정치권이 이런 관행을 타파하겠다고 선언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이 사민당· 국민신당 등 연립여당 간사장들과 만나 여당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을 갈 경우 방문국 재외공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항공기 좌석도 퍼스트에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자진해서 낮추기로 했다.

국회의원들의 방문 목적과 성격에 따라서는 접대가 불가피한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이라면 으레 외국에 나가서도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특권 의식이다. 이들을 제대로 못 모시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관장들의 피해의식도 문제다. 국회의원 접대를 정치권과 친분을 쌓는 ‘내교(內交)’의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사(公私) 구분을 엄격히 못하는 동양적 문화에 기인한 측면을 무시할 순 없지만 국내 인사 접대 때문에 외교 업무에 차질을 빚는 현실은 서구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후진적 현상이다.

외교통상부는 올 8월 ‘국회의원 해외여행 시 예우에 관한 지침’을 마련, 공관장이 직접 공항에 나가 영접·환송하는 경우를 국회 정·부의장과 상임위원장 및 대통령 특사로 한정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본처럼 정치권이 먼저 문제의식을 갖고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고치기 어렵다.

출장 나온 국회의원에 대한 현지 공관의 지원은 방문 목적과 관련한 공적인 영역에 그쳐야 한다. 최근 들어 비즈니스 클래스석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규정상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게 돼 있다. 공식 여행 경비에 더해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지급되는 관행도 여전하다. 특권에 연연하지 않는 공복(公僕) 의식이 우선이겠지만 여행 경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국회 차원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