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참전국, 유엔 총장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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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이라크 참전국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아난 총장이 18일 방송 예정인 영국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은 불법(illegal)"이라고 말한 사실이 15일 알려졌기 때문이다. 참전 당사국들이 앞다퉈 전쟁은 불법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아난 총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전쟁의 주역인 미국이 먼저 반박하고 나섰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16일 "군사작전은 유엔의 결의안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11월 안보리에서 채택한 1441호 결의안에 근거했다는 논리다. 1441호는 "(이라크 정부가) 의심스러운 무기 관련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다.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 등 의심되는 무기 관련 공개나 파기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기에 '심각한 사태', 즉 전쟁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아난 총장의 해석은 미국과 다르다. 즉 1441호 결의안에서 경고한 '심각한 사태'의 내용 역시 안보리가 논의해 결정할 문제지 미국 맘대로 전쟁을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논리다. 미국이 안보리의 2차 결의안(선전포고) 채택을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했기에 "유엔헌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장관 보좌관을 지낸 랜디 슈네만은 "대선을 50일 앞두고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유엔이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등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무능하기 짝이 없다. 총장이 말하는 국제협력이란 말은 비효율성이란 뜻"이라고 비난했다.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는 유엔 조직 자체를 비난했다. 그는 "유엔은 반신불수다. 국제적 위기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국제법상 하자가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퍼트리샤 휴잇 통상산업장관도 "이라크 전쟁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필요 불가결한 결정이었다"고 반박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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