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역수지 이대로 괜찮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무역수지 동향이 심상찮다.4월 중 무역흑자는 2억2천5백만달러(통관기준)로 지난달에 이어 가까스로 흑자권에 턱걸이했다.

수출은 18.6% 늘어난 반면 수입은 사상최고인 하루 6억2천만달러에 이르는 등 폭발적인 증가세(47.4%)를 보인 탓이다. 이로 인해 1~4월 무역흑자는 7억7천3백만달러로 지난해의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수입이 급증한 것은 고유가(高油價)탓이 크다. 또 투자를 늘리고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수입증가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4월 수입 중 자본재.원자재가 90%를 차지, 내용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역흑자가 빠르게 줄면서 흑자기조가 위협받는 최근 현상은 불안하다. 자동차 파업 등을 감안하더라도 4월 수출증가율이 올들어 처음으로 10%대로 낮아진 것도 걱정스런 모습이다.

무역협회.한국개발연구원 등이 잇따라 무역흑자 전망치를 큰 폭으로 하향조정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도 나온다.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던 게 불과 2년반 전이고, 외국빚을 갚기 위해 계속 거액의 외화가 필요한 우리 현실에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밀어내기 수출이나 인위적 수입억제는 안된다.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원자재가 부족하고 부품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산업구조상 고(高)성장.물가안정.무역흑자 등 세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는 무역수지 악화를 감수하면서 현 성장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정책 우선순위에 다소 손을 댈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재의 경제여건과 금리정책.무역수지 관리방안 등에 대해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 재점검,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고질적인 대일(對日)적자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올들어 4월 20일까지 대일적자는 39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식이면 수출도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로 인해 주춤해진 부품.소재 국산화에 정부.업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고가 수입소비재가 불티나게 팔리는 일부의 해이해진 분위기도 자율적 자제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최근 정부는 '신(新)경제' 타령을 자주 한다. 과연 우리가 미국처럼 높은 경제성장과 저물가를 장기간 구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는가. 장밋빛 미래상만 제시하다가 국민을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점검과 종합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