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좋은 사립학교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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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외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난 뒤 사회가 다시 교육문제로 시끄럽다.

중증을 않고 있는 우리 교육을 회생시키기에 필요한 물꼬가 드디어 트였구나 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는 입장이 과외 합법화는 고액과외 열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믿으며 반발하는 입장과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장관이 방송에 나와 과외근절은 공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지 법적 제재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공교육을 강화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항상 그랬듯이 새로 채택될 교육과정에 모든 기대를 거는 듯하다.

10조원의 추가 교육예산을 확보해 학급의 크기를 줄이고 학생들에게 학과목 선택권을 폭넓게 부여하는 7차 교육과정을 시행에 옮기면 과외는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교육부가 공.사립 모든 학교들을 중앙집권적으로 관리통제하는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한 과연 국민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요구에 맞는 학교들이 생길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인터넷 시대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의 내용 및 수준과 양상은 세금으로 운영되며, 거대한 관료제의 타성에 젖어있는 교육부 홀로 감당해 내기에는 너무도 벅찬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의 정신을 살려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규제를 과감히 풀고 명실상부한 사립학교들이 자라날 수 있는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외국유학이나 과외수업으로 쓰이는 돈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흡수해 학교교육을 강화해 과외의 실질적 필요성을 없애는 근원적 대책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학교 평준화를 이룩해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좋은 교육 여건을 갖추기에 충분할 만큼 비싼 등록금을 받는 사립학교들이 생기는 것을 억제해 왔다.

그 결과 학교는 공.사립 할 것 없이 교사도 학생도, 공부 잘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늘진 반문화적 공간으로 변질돼 갔고 학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학원 또는 과외수업이라는 방편으로 자구책을 강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과외란 정부가 마련해 주는 열악한 환경의 학교 대신 돈을 많이 내고라도 안심하고 자녀들을 맡기고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좋은 학교들이 생기는 것을 정책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생겨난 사회현상이다.

학부모들이 국가통제가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자기들의 안방에 몇배로 비싸면서 교육적 가치는 떨어지는 사립학교를 차린 것이고 국가는 그것을 다시 불법으로 단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순응하며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에서 그에 상응하는 교육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진작부터 채택했어야 할 방침이 공.사립 학교를 구분해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곧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립학교는 시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최저한선을 보장해주고 그 선을 계속 높이는 데 치중하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많은 학비를 부담하고라도 보다 좋은 교육 여건 속에서 개성에 맞는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기회를 주는 진정한 사립학교의 육성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역량의 최대치가 학교제도 속으로 유입될 수 있으며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공립학교 육성에 집중 투자함으로서 비싼 사립에 못지 않은 좋은 교육여건을 갖추고도 학비 부담은 적은 학교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좋은 학교들이 생기면 조기유학이니 불법과외니 하는 파행적 교육행위가 들어설 자리는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제적 수준으로도 손색없는 교사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맡길 수 있는 좋은 사립학교들이 하나 둘씩이라도 생길 수 있는 여건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

비싼 학비를 받는 대신에 일정 비율의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받을 것을 학교설립 조건으로 부과한다면 하향적 평준화 속에서 고액과외가 판치는 지금의 현실에서보다는 가난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최선의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가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학교 차등화를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교육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수요공급의 논지를 무시한 형식적 학교 평준화 정책이 가져온 현실적 결과가 비밀과외.조기유학 등 공교육 전체를 좀먹는 현상임을 생각한다면 특성있는 건전한 사립학교의 육성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도 질 좋은 교육의 기회가 돌아오게 하는 궁극적인 대책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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