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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극단을 찾아서] 3. 거창 '입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한국의 아비뇽을 만들겠다."

이종일 대표(48)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국 유일의 군(郡)단위 극단인 입체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제야 할 만하다" 고 말을 열었다. 인구 7만명의 경남 거창군에서 세계를 향한 연극을 꿈꾸고 있다.

매년 7월 세계 연극제를 여는 프랑스의 아비뇽처럼 거창을 한국의 대표 연극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실제로 올 8월에 열릴 제12회 거창국제연극제 준비에 열심이다. 일본.러시아.프랑스.독일 등 외국팀 섭외도 마무리했다. 옆에 있던 배우 서정상(29)이 거든다.

"우리도 팬클럽이 있어요. 읍내를 걷다 보면 여학생들이 사인을 요청합니다. 스타가 별겁니까. "

극단의 활달함이 느껴진다.

곡물창고를 빌린 연습장을 찾아갔다.

10여명의 배우가 썰렁한 시멘트 바닥에 비닐을 깔고 오태석작 '초분' 연습에 한창이다.

12일 거창, 15일 울산, 7월 아비뇽 연극제, 8월 거창 연극제 등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늦은 봄바람이 창고를 세차게 두들기지만 배우들의 이마엔 비지땀이 銓피求?

아비뇽만 해도 올해로 세번째 참가.

이밖에도 매년 서너 차례 정기공연, 청소년 연극제, 어린이 연극교실 등으로 극단은 항상 분주하다.

지금껏 1백여 차례의 무대를 꾸며왔다.

평균 고도 4백m의 산골 오지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생겼을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셈이지요. 단원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겁니다. "

처음은 '불모지대' 자체였다.

문화 관련단체가 전무했던 거창에 극단을 세운 때는 1983년. 부산에서 거창으로 옮겨 온 중학교 영어교사인 이대표가 다른 교사 10여명과 뜻을 모아 극단을 차렸다.

학생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문화를 알리려는 소박한 욕심에서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관객은 청소년.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역전됐다.

당시 학생들이 자라 성인이 됐고, 또 계속 극장을 찾아준 까닭에 요즘엔 일반 관객이 더 많다.

89년 지역축제로 시작한 연극제도 95년부터 국제행사로 확대했다.

경남대 연극반 출신인 이대표도 그동안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과 도쿄의 니혼대학에서 공부하며 입체를 교사 중심의 아마추어 극단에서 배우 중심의 전문 극단으로 키워냈다.

"관객은 평등합니다. 서울과 지방의 구분이 없죠. 오히려 산골이라 작업하기가 편한 점도 많아요. 주변 눈치 안보고 소신껏 일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선 아무래도 다른 극단에 신경을 써야 해요. 게다가 삶의 무한한 보금자리인 자연에 푹 싸여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가끔 대학로 사람들이 연극 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거창에서도 하는데'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입을 다물어요. "

이대표의 당당한 발언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배우들 확보. 깊은 산골이다 보니 배우를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작품에 따라 오디션을 통해 외부 연기자를 충원하나 만만치 않다.

그래도 그는 꿈을 잃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거창에 연극대학을 세울 겁니다.

거창이 한국연극의 메카로 주목받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거창〓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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