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현장을 찍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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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장의 사진이 며칠째 미국을 흔들어놓고 있다.

지난 22일 새벽 연방요원이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를 마이애미 친척집에서 '확보' 하는 장면이다.

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준 어부의 품에 안겨 벽장에 숨어 있는 엘리안, 테러진압 부대원처럼 중무장한 채 엘리안을 내놓으라고 위협하는 요원, 어부쪽으로 향한 MP-5 자동소총의 총부리,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는 엘리안.

여섯살짜리 소년의 운명과 그를 독재자 카스트로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미국내 쿠바인들의 반발, 누가 뭐래도 법은 지키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 등 모든 극적 요소가 이 사진 한장에 담겨 있다.

AP통신 프리랜서 앨란 디아즈가 찍은 이 사진은 곧바로 전세계에 퍼졌고 재닛 리노 법무장관을 공격하는 비판자들에게 사진은 유용한 증거가 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은 과잉작전 여부를 규명할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중무장한 요원이 투입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며 사건의 파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법무부는 어떻게 사진기자의 현장접근을 허용했을까.

그 배경엔 리노 장관의 결심이 있었다고 한다. 리노 장관은 작전개시 전 언론의 촬영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현장을 완전 봉쇄해야 한다" "법원의 명령을 받아내 언론을 현장에서 내몰자" "엘리안을 태울 밴을 현관에 바짝 붙여 사진찍을 틈을 주지 말자" 등등…. 법무부내 의견은 주로 차단쪽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리노 장관은 언론 전문가들과 상의한 뒤 사진기자들이 작전을 방해하지 않는 한 촬영을 막지 말도록 명령했다.

법무부는 7년 전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사교집단 다윗파의 점거사태를 진압하면서 언론을 차단했었다. 진압과정에서 무려 75명이 죽었다.

법무부는 "정부가 진상을 은폐하려 언론을 막았다" 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리노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현장에 언론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기습작전에 대해선 논란이 뜨겁다. 미국인의 3분의 2가 찬성하지만 비판론도 거세다. 하지만 작전이 옳았건 잘못됐건 "사진기자를 막지말라" 는 장관의 명령은 법집행의 자신감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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