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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춘향뎐' 제작자 이태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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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춘향뎐' 의 제작자 이태원(63.태흥영화사 대표)씨는 요즘 기분이 하늘을 나를 것 같다가도 한 번씩 허탈해진다.

영화 제작업에 뛰어든 지 1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꿈' 은 실현됐지만 기나림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때때로 행복한 무력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1983년부터 그가 기획하고 투자한 38편의 영화 중 아홉편이 임감독의 작품. '아제아제 바라아제' (89년)이후 '개벽' 을 제외하면 임권택이라는 '한 우물' 을 파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이태원-임권택-정일성 촬영감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끈끈한 '황금 트리오' 가 됐다.

평소에도 좌중을 휘어잡는 호방한 성격의 그는 "5월 17일 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판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빨간 카페트 위를 걸어가는 장면만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뛴다" 며 차오르는 만족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쁘나.

"개인적으로 영광이기도 하지만 한국 영화를 위해서도 경사스러운 일이다.

'춘향뎐' 이 칸 경쟁부문에 진출함으로써 앞으로 한국 영화 시장의 저변이 확대될 거다.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 더 많은 자부심을 갖게 되고 그 결과 한국 영화에 애정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이 느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번 '사건' 은 의미가 크다."

- '세븐틴' 이나 '세기말' 등 최근 만든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초조하진 않았나.

"관객들의 기호가 젊어지면서 내같은 구닥다리가 설 땅이 좁아지는 걸 많이 느낀게 사실이다.

일선에서 물러나야되는 것 아니냐는 충고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하나는 이뤄놓고 바통을 넘겨야한다는 오기 비슷한 게 있었다.

이번 칸 본선 진출로 임 감독과 나로서는 한을 푼 거나 다름없다. 임감독이 다른 제작자와 손 잡지않고 나를 믿고 따라와 준 것도 고맙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도 좋다고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준비도 하고 있다.

기획이나 관객들과의 접촉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중진들을 접촉하는 일과 전체를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한다."

-80년대 이후 젊은 기획자들과 제작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당신같은 충무로의 토착제작자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그들은 나름 대로 한국영화를 진흥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시나리오와 배우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든다. 그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감독에 치중한다.

제작을 오래 해 보니까 배우에 의존하는 건 길게 보면 마이너스인 것 같더라. 영화는 결국 감독이다.

감독을 정점으로 해서 스태프들과 제작자가 측면 지원하는 게 영화다.

그래서 감독 위주의 전략을 고수할 생각이다. 솔직히 홍상수나 이창동 같은 유능한 젊은 감독은 탐이 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하고 싶다. 그렇다고 돈되는 영화를 안 한다는 건 아니다. 둘을 병행하되 작가 육성에 비중을 둔다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제작자로서의 강우석 감독을 높이 평가한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다양하고 많은 영화가 나와야 영화계 인력들도 일자리가 늘고 그러다보면 좋은 영화도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일각에서는 마치 내가 로비라도 해서 칸 본선에 나간 것처럼 삐딱하게 보는 걸 알고 있다" 며 "알다시피 칸영화제가 어디 그런 술수가 통하는 곳이냐" 며 일침을 놓았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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