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해진 아내, 살인현장서 발견한 그녀의 흔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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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호 04면

유능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뻣뻣한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마찰을 빚곤 하는 형사 성렬(차승원). 운전 중 차 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뒤에는 아내 지연(송윤아)과의 사이도 서먹해졌다. 어느 날 조폭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그는 뜻밖에 아내의 흔적을 발견한다. 며칠 전 엉망이 된 모습으로 귀가했던 아내의 귀걸이, 재킷 단추 등이 눈에 띈 것이다. 눈치 빠른 앙숙 최 형사(박원상)의 시선을 피해 증거를 인멸하는 성렬. 그러나 현장 근처에서 여성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영화 ‘시크릿’, 감독 윤재구, 출연 차승원 송윤아 류승룡

거기에 조폭 보스 재칼(류승룡)은 친동생의 살해범을 직접 잡겠다며 조직을 동원해 범인을 쫓는다. 설상가상 CCTV 화면이 확보되고 성렬에게는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과연 지연은 진범일까, 또 성렬은 아내를 구할 수 있을까.

원제는 ‘세이빙 마이 와이프’. 김윤진 주연의 ‘세븐 데이즈’의 원작자 윤재구의 감독 데뷔작이다. 원래 ‘세이빙 마이 칠드런’이 제목이었던 ‘세븐 데이즈’를 시작으로 해 그가 쓴 네 편의 ‘세이빙’ 시리즈의 두 번째다. 가족 소재 스릴러인 1, 2편에 이어 ‘세이빙 마이 프렌즈’는 호러, ‘세이빙 마이 어쓰’는 세미 SF가 가미된 스릴러라고 소개한다.

납치된 딸을 구해내기 위해 정해진 기일 안에 재판에서 패소해야만 하는 변호사(김윤진)를 내세운 ‘세븐 데이즈’에 이어 ‘시크릿’ 역시 탄탄한 스릴러적 설정을 과시한다. 수사를 하면서 용의자인 아내의 흔적을 지워야 하는 형사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고,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성렬, 지연, 재칼은 모두 서로에게 ‘비밀’을 숨기고 계속 새로운 인물과 상황이 등장하면서 퍼즐게임의 난도를 높여 간다. 제법 ‘때깔’ 있는 화면에,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차승원은 코미디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훌쩍 벗어던지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어느 영화에서든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명품 조연’ 류승룡은 치 떨리는 악한은 이런 것임을 웅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윤재구 감독은, 각본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에 비해 아직 감독으로서의 연출력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다.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는 일정 부분 확보했지만, 그 이야기의 뿌리에 있는 가족 비극이 주는 처연함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휴먼드라마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유기적으로 살아나지 못한 것. 가족 비극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객석은 맥이 빠지고, 그 비극이 봉합되는 상황 역시 뜬금없다. 짜임새 있는 스릴러지만 뭔가 갈채를 보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일 듯.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야심 찬 반전은, 사족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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