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외화 상점은 모두 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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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에서) 올 때가 됐는데. 왜 이렇게 차가 안 들어오는 거야. 혹시 못 오는 거 아닌가.”

4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하이관(海關:세관) 앞마당. 북한 무역일꾼(무역상)과 중국 국경무역상 200여 명이 초조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둥에 상주하는 북한 무역일꾼 A씨는 “아침 일찍부터 나와 (출입국) 수속을 마쳤는데 화폐 개혁 때문에 저쪽(북한)에서 사람이 올지 안 올지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전 9시30분이 되자 북한의 평안북도 번호판을 단 트럭과 일제 도요타 지프 등이 한두 대씩 들어왔다. 어렵사리 평양에서 들어온 김광철(가명)씨를 만날 수 있었다. 3일 오전 평양을 출발, 신의주를 거쳐 단둥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인민반(반장 또는 이장)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6일까지는 모아 둔 돈을 모두 바치라고 통보하고 돈을 거두고 있다”며 “새 돈은 일단 평양에 일부만 공개됐고, 7일부터 본격적으로 풀린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돈(북한 돈) 들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 기절하고 있다”며 “지금 평양은 사재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외화상점(달러·인민폐·유로·엔화로 거래)은 모두 폐쇄됐고, 내화상점(북한 돈만 거래)만 북적거린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돈을 바꾸면서 ㎏당 1700원 하던 쌀을 지금은 1만5000원을 줘도 못 구한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식구가 4명인데 갖고 있던 돈 30만원을 바쳤다”며 “어차피 휴지 조각이 된 마당에 몽땅 털어내 애국심이라도 인정받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장군님의 배려로 집집마다 500원씩 새 돈을 줄 것이란 얘기를 열차 타고 오면서 들었다. 7일부터 집마다 10만원 헌 돈을 새 돈 1000원으로 바꾸고, 장군님이 500원을 주시면 모두 1500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개혁 조치로 타격을 받은 사람들의 반발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개인 장사꾼들은 열불 난다면서 5000원짜리를 태우기도 한다고 들었다. 주석님 초상화가 있는 돈을 태우면 반동으로 몰리기 때문에 몰래 태운다”고 말했다.

이번 화폐 개혁 목적에 대해 김씨는 “1992년 화폐 개혁 조치 이후 인민들이 돈을 장롱 속에 감춰 두고 은행에 예금을 하지 않아 돈이 안 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7·1 조치 이후 빈부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게 벌어졌다. 이번 조치로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중국과의 국경무역을 15년간 했다는 또 다른 북한 무역일꾼은 “북한에서 외화 사용이 어려워져 앞으로는 국경무역이 물물교역으로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둥=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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