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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정치신인이여, 반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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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균형과 견제 속에서 양당정치를 펼치라는 것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식견해부터가 바로 그렇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선거결과가 마치 국민이 양당체제를 선호하는 듯한 착각이나 아전인수식 해석을 할 수 있게끔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결과는 우연이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된 것은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대안이 될 만큼 잘나서가 아니었다.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반(反)DJ.반 호남의 반사이득을 보았을 뿐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버금가는 당선자를 낸 것도 역시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또 개혁정당이란 성격을 뚜렷이 확립해 개혁성향의 표를 결집한 때문도 아니었다. 여전히 지역정서에 절대적 도움을 받았고 시민단체가 일으킨 '바꿔' 열풍을 십분 활용한 민첩한 공천전략이 효과를 보았을 뿐이다.

자민련은 너무 진부하고, 새로 선보인 진보정당은 너무 허약하다 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권자가 두 당 중 하나를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이를 마치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 영국의 노동당이나 보수당처럼 양당정치를 실험하라고 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착각도 이처럼 큰 착각이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은 한마디로 말해 '물갈이' 였다. 영남지역은 반 DJ.반 호남 감정을 드러내느라 이 '물갈이' 욕구를 뒤로 돌렸다. 그러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지겨운 인물을 바꿔보자는 갈망이 뚜렷이 표출됐다. 호남에서조차 무소속이 4명이나 당선된 것이 그 증거의 하나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치에서 가장 어깨가 무거워진 사람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아니고 바로 정치신인인 1백11명의 초선의원들이다. 이들은 전체의 40.7%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물갈이를 할 만큼 했다고 할 것이다. 이러고도 새 바람이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신세한탄이나 할 도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정치신인들은 국민을 더는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난 15대 때도 초선의원의 비율이 35.4%나 돼 국민 기대도 컸고 그들의 개혁의지도 처음엔 당찼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우리 정치가 그들에 의해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개혁의지는 있었지만 세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이번 총선에서 재선이 82명에 달한다. 초.재선을 합치면 1백93명으로 신진세력이 전체의 70.7%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비율이다. 뜻을 모으고 조직을 갖춘다면 못할 것이 없는 비율인 것이다.

다행히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구별없이 시대와 국민의 요구 및 기대에 부응하려는 정치신인들의 신선한 움직임들이 줄을 잇고 있다.

'1인 보스정치를 반대한다' '탈계보를 선언하겠다' '일방적 지시나 하향식 공천에 반대한다' '여야 구별없이 사안에 따라 크로스보팅을 하겠다' 등등 정치신인들의 공식.비공식 결의 표명이 그것이다.

노회한 3金과 그 뒤를 노리는 보스들이 자신의 세력약화를 초래할 움직임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회유와 당근, 때로는 협박과 채찍으로 신인들을 자기 편에 줄 세우려 들 것이다. 뿐인가. 우리 정치판에서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자체가 주는 달콤한 유혹과 마취력은 국회의원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못할 만큼 강하다지 않은가. 자칫하면 정치신인들의 결의도 새해의 다짐처럼 '작심 3일' 로 끝나 버릴 가능성도 있다.

정치신인들 가운데는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와 386세대가 적지 않다. 이들의 정치권 진입에 대해 '유권자들의 기성정치 염증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기성정치권의 정치마케팅의 성과일 뿐' 이라든가 '공천신청 과정을 보면 기성정치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는 등의 회의적인 시각과 비판도 따갑다.

엊그제 4.19날 4.19세대인 한 정치인은 "4.19세대 정치인들은 군사정권과 3金씨 밑에서 하수인 노릇만 하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번도 전면에 부상하지 못한 채 세대교체대상으로 전락했다" 고 허탈해 했다. 모래시계와 386세대라 해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지난 날을 스스로 배신하고 욕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성정치의 유혹과 미끼를 물리쳐야 한다. '정치신인이여- 반란을 조직하라' -. 이것이 16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명령이다.

유승삼<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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