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데이트] 일본 소프트뱅크 가는 이범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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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 깜짝 스타는 이범호(28)다. 그는 지난달 일본 소프트뱅크와 3년 최대 5억 엔(약 65억원)에 입단 계약을 했다. 국가대표 4번타자 김태균(지바 롯데·3년 최대 7억 엔)과 달리 이범호의 일본 진출은 발표 직전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개인 타이틀을 수상한 적이 없고, 한화에서 10년을 뛰는 동안 1년 후배 김태균에 이어 늘 2인자였던 이범호가 어떻게 대박을 터뜨렸을까. 지난 1일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고기 반찬이 소중했던 소년

이범호는 “솔직히 과분한 계약이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웃었다. 그의 올해 연봉은 3억3000만원. 소프트뱅크가 2010년 지급할 연봉은 1억 엔(약 13억원)이다. 2년간 성적이 좋으면 2012년 연봉은 1억5000만 엔(약 19억5000만원)으로 뛴다. 그는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까지 지원받는다.

이범호는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자랐다. 중·고교 때 학부모들이 매일 야구부원들 밥을 지었는데 친구들이 “너희 집 당번 때는 왜 고기 반찬이 나오지 않느냐”고 말해 상처도 받았다. 그는 “학창 시절엔 꾸역꾸역 야구를 했다. 프로에 갈 수 있을지도 자신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소속팀 대구고가 2무18패로 처참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정영기 스카우트(현 한화 2군 감독)는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외면하고 이범호를 2차 1번으로 지명했다. 정신력과 성실성, 그리고 탄탄한 하체를 눈여겨 봤기 때문이다. 이범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허벅지 둘레가 25인치(약 63㎝)다.

이범호는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 ‘네가 야구 안 하면 뭘 해먹고 살겠느냐’고 핀잔을 주시면서도 아들을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소프트뱅크에서 받은 계약금(1억5000만 엔)을 부모님께 드렸더니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한 푼도 못 쓰겠다’며 은행에 넣으셨다”며 웃었다. 효자 이범호가 대형 계약을 끝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를 도와 김장을 한 것이다.

#WBC, 인생을 바꾸다

한화 시절 이범호의 평균 성적은 홈런 25개, 타점 80개 안팎이었다. ‘평범한’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었다. 김한수(당시 삼성) 대신 대표팀에 뽑힌 그는 주전 3루수 김동주(두산)의 부상으로 선발 출장 기회를 얻었다.

그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3월 2회 대회 때는 당당히 주전으로 나서 3홈런·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일본전에 강렬한 타격을 보인 덕분에 소프트뱅크와 대형 계약이 성사됐다. 이범호는 “WBC에서 연봉 100억원을 받는 투수들 공도 때렸다. 1억~2억원 받는 우리 투수들보다 상대하기 쉬울 때도 있었다. 3루 수비만큼은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한다. 일본 투수들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그들과 상대하다 보면 내 타격도 발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가난했고, 특출나지도 않았던 이범호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성공 스토리를 썼다. 귀빈 대접을 받고 일본에 진출했고 내년쯤 여자친구와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그는 “팬들이 붙여준 ‘꽃범호’라는 별명을 가슴에 담고 가겠다.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일본에서 꼭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잘나지 않은 나도 좋은 대우를 받고 일본에 간다. 형편 어려운 후배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김식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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