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상스럽다던 원시문명관 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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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루브르 박물관이 19일 아프리카.북남미.오세아니아.아시아 대륙 원주민들의 조각품 1백17점을 한자리에 모은 원시 조각관을 공식 개관한다.

루브르는 그동안 세계 최대규모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원시문명의 예술품에 대해선 인색한 태도를 취해왔다.

주술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형상, 지나치게 과장된 성기, 인간의 두골을 이용한 야만적 장식….

1920년 예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이 "저런 것들을 루브르가 소장할 수 있느냐" 고 의문을 제기한 이후 루브르는 원시 조각품들에 대해 빗장을 걸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논쟁이 계속돼 왔다.

원시 미술품의 루브르 입성에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은 아프리카 미술품 수집상이자 이번 전시의 책임 큐레이터인 자크 케르샤슈(57).

1990년 3백50명의 예술가.지식인들과 함께 "지구상의 모든 명작 예술품은 자유롭고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는 공동선언문을 발표, 내연하던 논쟁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루브르 당국과 보수적 예술가들을 "맹목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인종차별주의자" 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결국 96년 친분이 있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설득, 루브르에 새로운 전시관을 만드는 계획을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3년반 만에 루브르 박물관의 한복판에 문을 열게 된 원시 조각관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식 개관에 앞서 15~16일 열린 평가회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7천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들었다.

르몽드를 비롯한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유럽 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던 루브르가 다른 대륙의 원시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규모의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됐다" 고 극찬했다.

하지만 루브르 당국은 여전히 못마땅한 눈치다. 피에르 로젠베르 루브르 박물관장은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대륙의 예술품 전시를 위한 브랑리 박물관이 2004년 개관하면 전시 작품을 모두 이전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케르샤슈는 그러나 느긋하다. 로젠베르의 임기가 1년밖에 안남았기 때문이다.

또 전임 대통령의 의지가 후임 대통령에 의해 실현된 퐁피두 센터나 오르세 미술관 등의 전례에서 보듯 엘리제궁의 주인이 바뀐다 해서 국가정책이 하루 아침에 뒤바뀌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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