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곤살레스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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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여년째 마이애미의 리틀 하바나에서 살고 있는 49세의 라사로 곤살레스는 60만 쿠바난민 틈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사람이었다. 자동차수리공인 그는 어쩌다 한번씩 술을 과하게 마시는 외에는 아내와 딸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조용히 살아왔다.

정치에 아무 관심 없던 곤살레스가 리틀 하바나를 둘러싼 흥분과 긴장의 한가운데에서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먼 친척 조카 엘리안 때문이다.

밀항 도중 어머니를 잃은 엘리안이 구조된 후 미국 이민국은 엘리안의 친척을 수소문한 끝에 곤살레스를 찾아 임시보호자로 삼고 엘리안을 맡겼다.

리틀 하바나와 미국정부의 대결은 여기서 시작됐다. 법률적으로나 인도적으로나 엘리안을 쿠바의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정부방침에 대해 쿠바난민들은 어렵게 자유세계를 찾아온 소년을 돌려보낼 수 없다고 버텼다. 이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6세 어린이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여론의 비난은 특히 곤살레스에게 집중됐다.

엘리안의 장래를 위해 송환에 반대한다는 곤살레스의 주장이 여론의 불신을 받는 큰 이유는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그가 도중에 말을 바꾼 데 있다. 애초에 그는 대립을 부추기는 변호사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엘리안의 아버지를 옹호했다. 아버지와 잘 지내왔다는 말을 소년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송환방침이 굳어지자 태도를 바꿔 소년의 아버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며칠전 "쿠바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고 말하는 엘리안의 모습이 방영되자 여론은 더욱 분노했다. 이 여섯살배기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강압의 증거로 본 것이다.

곤살레스는 엘리안이 훗날 자신을 원망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에 빠져 있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한다. 아버지에게 못가게 막았다는 원망이 아니라 '생지옥' 쿠바에 돌아가게 했다는 원망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곤살레스는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가장으로서 엘리안의 아버지를 옹호했다. 그후 강제송환 방침에 한사코 반대하고 나선 것은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판단일 것이다.

한 평범한 인간의 소박한 진심이 이토록 물의를 빚어내는 것은 정치적 단층과 문화적 단층이 겹쳐진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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