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45억 쓴 출구조사 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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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론조사란게 오차범위를 인정해 방송하면 김빠진다. 시청자는 확정적인 것을 원한다. "

방송3사가 무려 45억원을 들여 실시한 출구조사가 상당부분 틀린 것으로 드러난 14일 새벽1시 여의도 MBC 스튜디오. 윤종보 총선방송기획단장은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이렇게 '소신' 있게 대답했다.

"오차범위를 병기해 보도하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면피' 라는 생각이 든다. "

방송3사가 출구조사에 대해 하고 있는 해명은 갖가지. 개표방송을 '확정보도' 해야하는 방송환경을 들거나 조사업체의 미숙함, 심지어 조사 응답자들의 '거짓말' 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빙의 경합지역만 40곳이 넘는 이번 총선을 칼로 무자르듯 A당 몇석, B당 몇석 식으로 단정 보도했던 방송3사의 '특종욕' 이 화근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방송사들은 사전 전화조사와 출구조사를 여러 차례 벌였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개표결과 97개 선거구 당선자의 실제 득표율이 예상득표율의 오차범위를 벗어난 이번 조사는 아무리 봐도 신뢰도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조사업체의 잘못이겠지만 조사내용을 잘 모른 채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긴 방송사의 잘못도 크다. MBC는 "경험많은 갤럽에 모든 것을 맡겼다" 며 개표방송 10분 전 갤럽으로부터 디스켓을 받아 그대로 방송했다.

방송사들은 "경합이나 혼전 지역에서 순위가 바뀐 것은 통계학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다" 고 애써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정당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소동이 일어난 것은 방송의 공익.신뢰성을 생각할 때 간과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방송사들은 3사공동 출구조사 모색 등 개표방송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특종, 눈앞의 시청률에 연연하는 방송환경에서 그같은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다음 총선때도 6시 땡 치면 1당은 어디, 2당은 어디 식으로 보도할 건가" 라는 질문에 MBC 윤종보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그런 식으로 가지 않겠나. 분위기상 그렇게 될수 밖에 없다. "

강찬호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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