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관리 나사가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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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영동지역 산불은 재난관리의 허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예고없이 덮친 재앙이 아니었다.

건조주의보와 함께 산불발생 보도가 계속됐고 급기야 제2의 대형 고성 산불이 발생했는데도 삼척.강릉 산불을 막지 못해 영동지역 상당부분이 초토화됐다는 것은 당국이 재난방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과 다름없다.

현지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잠자던 주민 수천명이 가재도구를 챙길 틈도 없이 대피하고, 어느 해안마을 주민들은 불 속에 갇히는 바람에 배를 타고 탈출했다.

온통 불바다가 돼 도로 곳곳이 끊기고, 송전선로가 차단되면서 인근 경북 울진 원전 2호기의 가동이 중단됐다. 이런 상황이 되도록 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산불발생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고 진화조차 여의치 않을 경우가 있다. 재난관리체계가 예방보다는 복구와 구호 위주인 것도 우리의 취약점이다. 그러나 거듭된 경고 속에서도 영동 산불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공조직의 나사가 풀려 있다는 방증 아닌가.

특히 중앙과 지방간의 역할분담과 협조가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은 심각한 문제다. 선출직 단체장들이 과거 대형 산불 하나에 자리가 걸렸던 임명직 때와 달리 산불예방에 소홀해지고, 그 결과 몇년 동안 산불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선 탓으로 지역분위기가 이완되고 산불보다는 표의 행방에만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행정서비스 개선이나 지역개발보다 더 막중한 책무다.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기고는 등산로 폐쇄다, 민방위대 동원령이다 부산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산림은 환경적.경제적 가치가 큰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자치단체들은 특히 봄.가을에는 '산불과의 전쟁' 에 나서야 한다. 특히 지자체 단체장들은 주민 생존권 방어차원에서 풀린 나사를 죄는 강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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