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에 비친 총선유세 인추협서 일기장 배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우리 학교 회장 선거 때에는 피자를 사주겠다고 한 두명이 탈락했다.

그리고 모두들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돈을 쓰는 후보도 문제지만 음식을 먹고 표를 찍는 어른들이 더 한심스럽다.(서울 A초등 5학년 李모군)

국회의원 후보 아저씨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다며 상대 후보를 헐뜯는데 정말 가관이다.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이 과연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가슴이 쓰리다. (서울 B초등 6학년 李모양)

어린 학생들의 눈망울에 비친 총선 모습은 곱지 않다.

인간성회복추진협의회(인추협)가 지난달 8일부터 전국 2백27개 선거구의 초.중.고생 6만5천여명에게 배포한 '총선 일기장' 에는 어른들의 추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상대방 헐뜯기에다 ▶향응 대가로 표 몰아주기▶같은 지역 사람 뽑아주기▶선거 무관심▶쓰레기장으로 변하는 유세장 등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고사리손에 의해 조목조목 적혀 있다.

많은 어린이들은 병역.납세.전과 공개 후 벌어진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을 보며 "반장선거보다 못하다" 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 C초등 6학년 梁모(12)군은 "어떤 후보가 내 아들은 군대에 다녀왔다며 청중에게 인사를 시켰다. 참 웃기는 일이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 후보는 또 선글라스를 쓴 모델처럼 생긴 누나들까지 몰고 다닌다" 며 어른들의 행동을 꼬집는다.

金모(12)양은 "아빠는 선거뉴스만 나오면 TV를 끄라고 소리치시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표다.

저질 국회의원들을 우리 국민이 다시 안 뽑도록 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張모(12)양은 "어떤 사람들은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고 투표날 놀러간다고 자랑한다" 며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고 일기장에 기록하고 있다.

총선일기 쓰기를 지도한 서울 창동초등 신충행(辛忠幸.56)교사는 "어른들의 행태를 답습해 아이들 사이에서도 지역감정이 퍼지는 걸 보면서 선거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고 지적한다.

인추협은 선거가 끝난 뒤 일기장들을 책으로 엮어 '아이들 눈에 비친 선거' 라는 제목의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박현선.이철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