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경협확대 만큼 안보조치 따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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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속담에 '산통(産痛)이 잦으면 아이가 나온다' 는 말이 있듯이 북한은 취임 연설을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해온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마침내 호응해왔다.

남북 분단 이래 처음 열리는 정상회담의 의의는 자못 크다. 나는 소련 시절 한.소 정상회담이 소련 국민에게 주는 영향과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체험한 일이 있다.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치지도자가 보여주는 행동이 뜻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특히 우리와 대치관계에 있는 북한의 정상회담이 북녘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은 클 것으로 믿으며 그것이 긍정적인 민족 화해의 제1보가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나는 조심스러우나마 이번 6.12 남북 정상회담이 한갓 정치행사로 끝날 수 없다는 관측을 해본다.

우선 북한의 이번 정상회담 수용은 그동안 평양이 추진해온 일련의 대외관계 개선 조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상반기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시발로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해왔다. 북한으로부터 관계개선의 교섭을 받은 우리 우방들은 평양측에 일관되게 얘기한 것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서방측과 관계개선을 하려면 먼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일본.유럽 여러나라의 강력한 권유에 더이상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북한은 국제적 원조 없이는 경제 회생의 방도가 없으며 정권 존립 자체가 종국에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6.12 남북 정상회담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정착을 가져오는 문제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정경분리원칙을 밝힌 바 있으나 지난해 발생한 서해 교전 사태에서 입증됐듯이 남북간의 실질적인 안전보장장치 없이는 참다운 남북 협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안전보장 문제와 대북 경제협력 사이에는 적절한 수준의 상호주의 원칙이 가동돼야겠다는 것이다.

남북 경협의 청사진이 그려질 때에는 동시에 안보상의 상응한 조치가 연계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불과 두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사전준비 교섭이 어느 정도 이뤄질지 미지수이나 너무 많은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평화 정착 문제에 건설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북한측은 남쪽 국민이 다같이 애타게 소망하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한 맺힌 민족의 갈등이 해소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나는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

공노명 <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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