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금융기관들 벤처투자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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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동안 창업투자회사가 주도해오던 벤처투자에 증권.은행.종금사는 물론이고 신협.금고 등 서민 금융기관까지 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웬만한 벤처기업들은 이미 투자기관들의 지분출자가 완료됐기 때문에 최근에는 기술력과 시장성도 없는 회사들로 자금이 흘러가고 있어 후유증이 예상되고 있다.

벤처 자금이 초과공급되다 보니 벤처기업의 프리미엄을 지나치게 부풀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 창투사와 증권사가 앞장〓창업투자(벤처 캐피털)업계의 올 한해 투자자금 규모만 해도 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우선 한국기술투자는 현재 5천억원 규모인 투자운용자산을 연말까지 1조원 수준으로 늘리고 투자업체 수도 1백80여개에서 3백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KTB네트워크(옛 한국종합기술금융)도 올해 중 투자규모를 7천억원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며, TG벤처투자와 무한기술투자도 운용자산 규모를 각각 4천억원, 1천2백억원으로 키울 계획이다.

증권사들은 지분 출자는 물론이고 코스닥시장이나 제3시장 등록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해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올들어 벤처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증권사는 현대.삼성.LG투자증권 등 재벌 계열사들로 투자한도가 사실상 무제한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대신.SK.동원.신영.한화증권 등도 돈 될만한 회사만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 은행.종금.보험사도 가세〓최근 연이어 벤처투자 전담부서를 신설해 벤처기업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은행은 1천억원 규모의 벤처투자펀드를 만들어 1백여개 기업에 주식이나 전환사채 인수방식으로 직접 출자하기로 했다. 한빛.산업.주택.조흥은행 등도 벤처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하나.한미은행은 별도의 자산운용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계도 흥국생명이 최근 자산운용 자회사인 태광에셋을 설립했으며, 신동아화재가 별도의 자산운용 자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최근 부산 벤처기술투자(옛 부산창투)를 인수한 중앙종금은 다음달 중 벤처투자부를 신설키로 했다. 동양종금은 기존 기업 인수.합병(M&A)팀을 투자사업팀으로 확대개편해 벤처투자를 강화했다. 신용금고업계도 최근 외부에서 자산운용전문가를 연이어 스카우트하는 등 유가증권 투자부문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 부작용이 문제〓투자 경쟁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금융기관의 벤처 지분출자는 코스닥시장 등록 이후 출자액의 수십, 수백배를 회수하는 '대박' 의 보증수표였다.

그러나 이처럼 벤처자금이 흘러넘치게 되면서 투자가 부실화하거나 환금성조차 제한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코스닥위원회의 등록심사에서 탈락한 12개사 가운데 과반수 이상은 벤처자금을 출자받았다. 이들의 코스닥등록이 끝내 무산된다면 출자한 금융기관들은 돈을 날릴 공산이 크다.

신영증권 기업금융부 전익수 차장은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뚜렷한 기술도 없으면서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 값을 70~80배까지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면서 "금융기관들이 너도 나도 벤처기업에 달려드는 바람에 가격을 이처럼 허무맹랑하게 부풀려놓은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기관들의 '묻지마' 식 벤처투자가 결국 벤처기업인들마저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 개발은 제쳐놓고 출자금 따먹기에 몰두하게 유도할 수 있다" 면서 "금융기관들이 기술력이나 시장성 등을 면밀히 따져 투자결정을 좀더 신중히 해야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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