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 초기의 경제사 연구자들을 사로잡은 문제의식은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이었다. 그들은 식민지기에 일제에 의해 부식된 '조선사회정체성론'을 타파하기 위한 민족적 사명감에서 17~19세기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를 향한 맹아적인 경제형태가 발전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추진 중인 '한국의 장기통계' 3개년 사업 중 첫 성과물로 나온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출판부)에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165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각종 통계수치는 자본주의 맹아론 혹은 내재적 발전론으로 대표되는 학계 통념과는 전혀 다르다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이 책에 수록된 연구성과를 총평한 글 '총설:조선후기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과 과제'에서 이 교수는 조선후기 경제는 18세기 안정기 혹은 발전기를 거쳐 19세기 중반, 특히 1860년 무렵에는 이미 국가권력이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대위기'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당시 조선 농촌사회에서는 비(非)시장경제가 대단히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19세기 중반기부터는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조선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불황으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족보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에 뚜렷한 인구감소 현상이 감지됐으며, 그 원인으로는 특히 1850년대 이후 두드러진 물가폭등과 농촌 및 도시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현상이 관찰됐다. 경상도 예천 박씨 양반가 일기를 분석한 결과, 이 양반가에 고용된 노동자는 임금이 1880~82년을 100으로 할 때 1853년은 150이었으나 1905년에는 50으로까지 떨어졌다. 논값 또한 18세기에는 안정적이었으나 1810년 이후 19세기말까지는 거의 절반으로 폭락했다.
이 교수는 이같은 결과를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대하기에는 이르다고 전제하면서도, 분석 여하에 따라선 조선왕조는 강력한 외세의 작용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미 모든 체력이 고갈된 채 파탄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사정이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조선후기는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내재적 파탄'상태였다는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