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 산책]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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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올들어 부쩍 언제쯤이면 물이 동나느니, 그래서 어떤 고초를 겪게 되느니 물타령이 한창인데다 아침이 하 좋다기에 얼마를 별러 이곳에 왔다.

여기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서울과 지척간인데 이렇게 어슬렁거려보기는 20여년만이다.

물은 옛물이 아닐 것이로되 푸근함은 그제나 매한가지다. 남류하는 북한강과 서로 흐르는 남한강이 만나 두물머리.두머리.두물거리란 옛 이름에 건지미.괘미.돌데미 등 마을이 정겹다.

마악 먼동이 틀 참이다. 강이 잠들어 있다. 희뿌연 물안개만 피워올리고 있다. 인근 산새들도 아직 안일어난 게다. 강이 지모(地母)의 가슴을 흐르는 젖줄일려니 모락이는 물안개는 그녀의 영혼일테다.

아니면 두강이 교합하는 사랑의 숨결일지도 모를 일이다. 물안개가 스치고 지난 자리에 온갖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들이 새생명의 축복으로 일렁이는 까닭이리라. 그래서인지 촉촉히 젖어오는 얼굴이 차갑지만 싫지않다.

이따금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도 강물에 잦아들어 상쾌한 리듬으로 변주되고, 그 품에 잠들어 아직 일지 않은 바람도 곧 기지개를 켤 태세다.

그러면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새들은 환희의 노래를 재잘거리겠지.

저만치 으슬대는 갈대사이로 이름모를 관목 하나가 젖어 있다. 벌써 가지마다 참새 혓바닥만한 새잎들이 삐죽한데 강쪽으로 뻗은 가지에는 묵은 이파리가 이내 인연을 다하려는 듯 파닥파닥 신음하고 있다.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이윽고 해가 들어 물안개는 스러지고 어둠에 숨어 있던 물비늘이 금빛으로 돋아나 반짝거린다. 내가 낯선 때문일까, 아직 물고기들은 소식이 없다. 흘러가는 구름도 외로운 듯 물속에 잠시 쉬어간다.

40여년전만 해도 이곳엔 뗏목 정류장이 있어 태백산.오대산 등에서 베어져 정선 아우라지를 떠난 수십, 수백채의 뗏목들이 강물을 덮는 장관이 이뤄지곤 했었다.

또 바다에서 어염을 싣고 내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곳배도 이따금씩 들러 흥청거림 속에 세상인심을 나누는 사랑방 고을이기도 했다.

하지만 뭍길이 오히려 편해지고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주변 논.밭이 늪지로 변해 물닭.덤불해오라기.논병아리 등 철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남은 땅뙈기도 아파트.전원주택들에 점령당한데다 인총이 크게 늘어 사람살이가 예전만큼 살갑지 못하다.

더구나 수도권 이웃들의 물창고 노릇을 하느라 갖은 면에서 생활을 옥죄고 있다.

그래도 철철이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저 너른 강심(江心)이 있기 때문이리니 그들이 그 속을 알까마는 제 잘났다고 악다구니쓰다 저 물이 버려지거나 없어지면 어이 할거나.

인간들의 탐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산을 품은채 물은 말이 없다.

운염염 수만만(雲苒苒 水滿滿 : 구름은 머흘머흘 물은 넘실넘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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