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은행 탄생… 독일 꿈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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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세계 최대의 은행을 탄생시키겠다던 독일 드림팀의 꿈이 결국 무산됐다.

총자산 1조1천6백억달러, 직원수 14만2천명의 초대형 은행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던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너방크는 5일 합병 계획을 한달만에 전격 철회했다.

독일 은행업계에서 오랜 라이벌이었던 양사는 합병을 발표한 뒤 합병이 가져올 고객들의 혜택에 대해 대대적인 캠페인까지 벌여오던 터였다.

전문가들은 합병이 결렬된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꼽고 있다.

먼저 도이체방크가 드레스너방크측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분석이다. 명목상 '대등한' 합병이었지만 합병은행의 지분은 도이체방크가 60~64%, 드레스너방크가 36~40%를 차지하게 돼 있어 드레스너측은 사실상 흡수된다는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도이체방크측이 합병협상 당시에는 거론조차 않던 드레스너의 투자은행 '클라인보르트' 의 매각방침을 밝히고 나서자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양사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합병 취소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두 은행의 업무 자체가 워낙 비슷해 합병시 총 종업원의 11.4%인 1만6천명이 감원될 전망이었다.

이는 두 은행의 조직을 동요시켰다. 게다가 도이체방크의 '얼굴' 이라 할 수 있는 채권거래 책임자 에드슨 미첼이 합병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만약 합병이 성사되면 은행을 떠나겠다고 위협한 것도 합병 취소를 부추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합병 계획이 발표된 지난달 9일 이후 20% 이상 떨어졌던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너의 주가가 합병 취소가 발표된 5일에는 4% 이상 급등한 점으로 미뤄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처음부터 양사의 합병은 무리이며,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합병취소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독일의 보험그룹인 알리안츠 그룹이 될 듯하다.

도이체방크의 지분 5%, 드레스너의 지분 21%를 갖고 있는 알리안츠는 합병협상을 주도하면서 합병시 도이체방크로부터 소매금융 분야를 인수하고 드레스너방크로부터 뮤추얼펀드 분야를 장악해 유럽 금융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는 야심을 품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알리안츠의 주가는 5일 14%나 폭락하며 최근 10년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합병취소는 또 다른 합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5일 "어차피 자체 경영능력을 상실한 드레스너방크를 노리고 벌써부터 체이스 맨해튼과 시티그룹 등 미국계 은행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편으로는 도이체방크가 합병이 아닌 적대적 인수를 통해 드레스너를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덧붙였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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