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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낯두껍기 경연대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6대 총선 투표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당도, 개인도 모두 상대방 헐뜯기에 매달리다 보니 선거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과열 혼탁해지는 느낌이다.

시민단체의 낙선 캠페인이나 후보자 검증을 위해 도입된 병역.납세.전과 공개가 변수이긴 하지만 지역감정이란 파도가 엄청나게 거센데다 당사자들이 워낙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바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병역이나 납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의무다. 적어도 국민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비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평소 정치인들이 뻔뻔하고 얼굴 두껍다고 느끼긴 했지만 총선 과정에서의 행태를 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토록 무수한 의혹이 제기돼도 무병(無兵)이건 무세(無稅)건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후보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인다.

또 자의건 타의건 기본 의무사항에 흠결이 있다면 먼저 미안해 하는 것이 도리일텐데 되레 큰소리치기 일쑤니 도대체 유권자들을 이렇게 얕잡아봐도 되는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선관위 공개자료를 보면 본인과 아들 모두 군대에 안간 후보자가 30명이다. 심지어 4부자가 모두 가지 않은 후보도 있다. 일반인 질병 면제비율이 52%인데 비해 후보자 자제는 82%나 된다. 아들.손자가 면제받은 후보자의 절반이 10억대 이상의 재산가들이라고 하니 유전무병(有錢無兵).유전유병(有錢有病)시비가 일지 않겠는가.

물론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신체 이상이나 질병.가정 형편.수형(受刑)등 합법적인 면제도 얼마든지 있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비난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정도만 인정돼야 한다고 본다.

극단적 예로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하느라 군대를 안갔다 하더라도 민주화에 대한 공로는 별도로 하고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한 허물은 그것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누군가 나라를 대신 지켜줬기 때문에 그들은 민주화의 뜻을 펼 수 있었다는 의미다.

납세 역시 당사자들은 온갖 해명을 하지만 탈세혐의도 한 둘이 아니다. 현역의원도 상당수 있다. 세수 늘리기에 혈안인 국세청이 이를 모를 리 없었을텐데 정치권력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과세를 못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15대 의원은 연간 7천만원의 세비를 받아 연 4백만원, 3년간 1천2백만원의 소득세 납부는 기본인데도 의원 20여명이 5백만원 미만을 냈다니 새삼 서민 월급쟁이만 봉이라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또 무세(無稅)후보자일수록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나오니 참으로 어이없다. 절세를 했건, 정말 소득이나 재산이 없어 못냈건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금을 적게 낸 게 자랑거리이고 큰소리 칠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전과공개도 마찬가지다. 공개도 하기 전에 당사자들이 미리 온갖 이유를 들어 물타기를 하고 있으니 유권자들이 청탁(淸濁)가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뇌물사건으로 처벌받고도 모두 야당탄압이나 표적.보복수사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마치 양심불량 경연대회를 보는 것 같다.

법을 어겨 처벌받은 사실이 어째서 하나같이 훈장으로 둔갑할 수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무고한 정치인을 가두고 처벌한 검찰.법원을 문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제시대 감옥살이한 온갖 잡범들이 해방이 되자 모두 독립운동했다고 주장했다더니 역사가 거꾸로 도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세금이건 병역이건 전과건간에 후보자 개인 나름대로는 이유도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한 과거에 대해서는 이를 변명하기 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와 양심을 보여주는 일이 더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를 정확히 보고 시비를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 안목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치 수준일 것이다.

권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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