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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 수정' 출연 문성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그동안 묵혀뒀던 연기에 대한 갈증이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는 몇번씩이나 "역시 연기가 제일" 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배우로서보다는 '영화행정가' '영화운동가' 라는 직함이 더 자주 따라다녔던 문성근(47)씨. '생과부위자료 청구소송' 이후 1년9개월만에 카메라 앞에 섰던 희열이 다시 떠오르는 듯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인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에서 그는 독립프로덕션에서 일하는 PD역을 맡았다.

별 전망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돈 많은 후배(정보석)에게 손을 벌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여직원과 후배가 사귀는 걸 알고 상처를 받는 인물이다.

그다지 비중있는 역은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역의 무게와 상관없이 1백% 만족스러웠다.

"왠지 모르게 그 역이 요즘의 내 심정과 맞아떨어졌어요. 왜 그런거 있쟎아요. 너저분하고 한심해서 더 애정이 가는 인물. 바로 내가 그랬거든요. 이즈음 나를 돌아보면 드는 생각이 참 한심하다는 거니까요".

그는 이제 갓 만신창이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의 부위원장직을 내놓고 영화계가 분열되는 걸 보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배우로서 행정을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에요. 그런 일은 제작자나 기획자, 정책전공 학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연기자는 정서적으로 강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아무래도 맞지 않았어요. 충무로가 참 저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실망도 많이 했지요. 최근 3기 영진위가 정책안을 내놓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걸 보고 아주 흡족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했고요. 우리 때 잘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위원회가 표류하면서 일부 정책이 실기(失期)한 건 안타까워요".

되돌아보면 그가 영화운동가로 불리게 된 계기도 영화때문이었다.

" '초록물고기' 같은 좋은 영화가 적자가 나는 걸 보고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안을 찾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발 한발, 늪에 빠지듯 활동가가 돼 버렸지 뭐에요" . 그러자 대중들의 머리에서도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희석돼 갔다.

"사실 '초록물고기' 에서의 심적인 타격 이후 연기에 대한 욕구도 많이 수그러든 상태였지요. 그런데 2년 가까이 눌러왔던 욕망이라 그랬는지 '오! 수정' 에서의 연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요".

알다시피 홍상수 감독은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연기를 배우에게 요구한다.

"연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기와 다큐멘터리처럼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 말입니다. 전자는 배우가 멋져 보이긴 하지만 생동하는 맛은 없지요. 반면 후자는 진정한 연기자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세계입니다. 바로 그런 면을 연기자로부터 제대로 끌어내는 게 홍감독의 독특함이었고 나도 아주 즐겼어요" .

항간에 나돌던 국회의원 출마설은? "구체적으로 깊이있게 이야기가 오간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역시 정치에 맞는 체질이 아닌 것 같았어요. 정치를 할만한 그릇도 못되고. 결국 사양하고 말았죠. 내년 초쯤 영진위의 정책이 검증되고 스크린쿼터 문제도 해결되면 완전히 연기 세계로 돌아갈 겁니다.기대해 주세요"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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