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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뜨끈한 한술 솥밥 든든한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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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맛있는 밥 한 그릇이면 백 가지 반찬이 필요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추울 때는, 그 뜨거운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김을 내뿜으며 먹는 그 맛은….

그래서 맛있는 밥을 찾아나선 끝에 결국 잘지은 ‘솥밥’ 한 그릇을 내놓기로 했다. 일인용 솥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그 솥밥 말이다. 솥밥은 의외로 무궁무진했다. 솥의 송류도 곱돌솥·무쇠솥·옹기솥·수정솥·압력솥 등 다양했고, 밥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솥밥전문점들도 같은 솥밥을 내는 집은 거의 없다. 곤드레나물을 넣은 곤드레 솥밥집도 있고, 새우·맛살·죽순을 넣고 달콤한 간장으로 간을 한 일본식 솥밥집도 있다. 어떤 것이든 좋다. 뜨거운 솥밥 한 그릇을 먹고, 그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불을 부어 긁어먹으면 그저 오늘 하루도 든든하고 행복해질 거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곱돌솥·무쇠솥·압력솥 밥맛 제각각

‘밥맛은 솥맛’.

요리에 관한 옛 문헌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1809년 발간된 여성생활백과 『규합총서』는 “밥과 죽은 돌솥이 으뜸이요, 오지탕관(질그릇에 잿물을 발라 구운 뚝배기)이 그 다음”이라고 썼고, 일제시대에 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밥은 곱돌솥이 으뜸이요, 오지탕관이 그 다음이요, 무쇠솥이 셋째요”라고 했다. 결국 솥에 따라 밥맛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실제 솥밥 전문점들은 곱돌솥과 무쇠솥은 많이 쓰고 있다. 모두 열이 고루 퍼져 쌀알이 고르게 익고 뜸이 잘 드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 솥은 솥뚜껑이 무거워 밥이 끓을 때 김이 달아나지 않아서 솥 안의 압력이 높아지며 밥이 맛있게 지어진다.

차이도 있다. 르네상스 서울호텔 한식당 사비루의 이선희 조리장은 “곱돌솥은 열을 받으면 미네랄 성분과 원적외선을 방출해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음식을 골고루 속까지 익혀주는 장점이 있고 무쇠솥은 솥에서 철분 성분이 우러나와 빈혈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고문헌들은 곱돌솥밥을 제일로 치고 무쇠솥밥을 그 다음이라고 했지만 실험에선 다소 상이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 과학기술사 연구실은 솥과 밥맛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무작위로 400명을 선발하고 이 중 미각이 발달한 10명을 엄선해 밥맛을 시험했다. 그 결과 밥 색깔과 윤기는 무쇠솥, 밥 냄새는 무쇠솥과 돌솥밥이, 밥맛은 무쇠솥이, 찰기는 압력밥솥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가 직접 사용하는 무쇠솥 중에선 솥바닥이 가장자리보다 두 배 정도 두꺼울 때 색·윤기·냄새·맛· 찰기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얻었다.

가정에서도 이런 솥으로 밥을 지을 수 있다. 곱돌솥과 무쇠솥 외에 내열 도자기솥, 수정원석으로 만들어 수정에서 방출되는 원적외선과 음이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솥, 천연 유약을 발라 섭씨 1200도에서 구워낸 옹기 솥 등 솥 종류도 다양하다. 서울 중앙시장에 전문상가도 있다. 단 집에서 이런 특별한 솥으로 밥을 해먹으려면 먼저 솥을 길들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 바닥에 기름칠을 하고 불기운을 쏘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군침 도는 곳, 예약 필수랍니다

동락 송이 솥밥  삼청터널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 쪽으로 가다 보면 유려한 필체의 한자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즐긴다’는 의미의 동락(同樂)이다. 동락은 각종 제철 식재료를 밥 위에 얹어 내는 솥밥으로 유명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엔 송이와 굴 솥밥이 인기다. 이곳의 특징은 제철인 가을에도 양껏 먹기 힘든 송이 솥밥을 1년 내내 맛볼 수 있어서다. 그것도 자연산 송이다. 매년 가을 송이철에 열리는 강원도 인제의 공판장에서 1년치 송이를 한꺼번에 구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귀모 사장은 “그 액수만 7000만~8000만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봄에는 성게와 멍게 솥밥이 잘 나간다. 2만2000원짜리 솥밥 정식엔 우거지 나물·취나물·깻잎무침·묵은지 김치찜과 약선 호박밥 등 10여 가지 찬이 곁들여진다. 월요일에 쉰다. 02-743-9976.

조금 일본식 솥밥   33년째 인사동 입구를 지키고 있는 ‘조금’은 일본식 솥밥으로 유명하다. 일본식 솥밥은 일식 된장인 미소시루 장국과 간장을 곁들여 먹는 특징이 있다. 솥밥 메뉴는 조금솥밥·송이솥밥(1만3000원), 전복솥밥(2만8000원) 등 3가지다. 이 중 조금솥밥은 하루에 200개 이상 나가는 베스트셀러다. 새우·죽순·대추·밤·은행·굴·버섯 등 들어가는 재료만 30가지가 넘는다. 맛의 비결은 좋은 쌀(이천쌀)과 밥 짓는 물에 있다. 생수가 아닌 조금만의 비법이 담긴 육수를 사용한다. 점심 시간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보통 솥밥집들이 곱돌솥이나 무쇠솥을 사용하는 데 비해 이곳에선 뚝배기를 사용한다. 02-725-8400.

강촌 쌈밥 영양돌솥밥과 20가지 쌈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코앞에 있는 ‘강촌쌈밥’. 앞뜰엔 물레방아가 돌고 집 주변으로 각종 장류를 담은 항아리가 즐비한 것이 마치 교외에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영양돌솥밥과 함께 나오는 20여 가지 쌈으로 유명하다. 가격은 9000원으로 한번 들른 손님은 바로 단골이 되고 만다. 철원 오대미로 지은 윤기 나는 밥 위에 은행과 조·고구마를 얹은 돌솥밥은 이름대로 영양이 가득 찼다. 여기에 자신들이 직접 재배하는 신선초·겨자· 비트잎 등 20여 가지 유기농 쌈채소와 돼지고기 편육이 따라 나온다. 웬만한 사람은 한 그릇을 다 비우기 힘들 정도로 푸짐하다. 02-395-6467.

나무가 있는 집 곤드레 솥밥   신문로 구세군 회관 뒤편의 강원도 토속음식점 ‘나무가 있는 집’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향긋함이 코끝을 자극한다. 강원도 영월 출신인 고봉학 사장이 정선에서 직접 공수해 온 곤드레 나물이 뿜어내는 향이다. 무쇠솥에 찹쌀을 넣고 그 위에 들기름에 볶은 곤드레 나물을 얹어내는 곤드레밥(1만원)을 먹으려면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정선과 평창의 특산물로 매년 5월 채취하는 곤드레에는 탄수화물·단백질·칼슘·비타민A 등이 많아 성인병 예방에 좋다. 이 집의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두부 요리. 하루 두 번 식당에서 직접 만드는 두부가 들어간 두부전골이 잘 나간다. 02-737-3888.



TIP 솥밥이 맛있는 이유

밥맛은 쌀·물·불·솥의 4대 요소의 조화가 좌우한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자문교수인 전희정(식품영양학) 교수는 “밥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뜸이 잘 들었느냐 여부인데 쇠나 돌을 재료로 한 솥은 많은 열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어떤 기구보다 뜸이 잘 들게 한다”며 “영양학적으로는 탄수화물을 가장 잘 흡수되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솥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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