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 비전을 말한다] 서울여대 이광자 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은 평소 글로벌과 로컬을 합친 ‘글로컬’을 강조한다. 세계와 소통하면서도 공동체 의식이 함양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근 기자]

서울여대가 있는 서울 공릉동 캠퍼스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 건물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미국에 있는 기숙형 대학(Residential College) 느낌이 든다. 이광자(66) 총장은 이 대학 1회 졸업생(1965년 졸업)이다. 이 총장은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모든 학생이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다”며 “그런 기숙형 학교의 전통을 잘 살려 잘 가르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10월 28일엔 공릉동 캠퍼스를 에코(ECO·친환경) 캠퍼스로 선포했다. 이 총장을 30일 만나 ‘교육 중심’을 내건 여자 대학의 미래를 들었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왜 에코 캠퍼스인가.

“ 기후 변화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내가 바뀌면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에코 캠퍼스로 선포했다. 선포 이후 강의실 전등을 모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바꾸고 있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전기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자전거도 교내에 설치했다.”(※이 총장은 이날 직접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돌렸다.)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지 않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도 바꿨다. 기후 변화 관련 과목은 내년부터 1학년 때 교양필수로 배워야 하며, 3~4학년 땐 전공과 연계된 강좌로 이수하도록 교육과정을 바꿨다.”

-어떤 인재를 키우고 싶은가.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재다. 남을 배려하는 인성을 갖추고, 남과 함께 살아가려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인재다.”

-대학이 인성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입시 경쟁이 시작된다. 가정에서도 성적과 점수만 오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고 나가니 사회가 갈수록 살벌해진다. 우리 대학은 물론 연구중심대학은 아니다. 경쟁력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모두가 함께 같이 가야 한다는 인성 교육을 철저히 하고 싶다.”

-대학생은 성인이어서 인성교육의 효과는 크지 않을 텐데.

“1학년 모든 학생은 3주간, 3학년은 2주간 합숙교육을 받는다.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인성교육이다. 여기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서울여대 초대 학장인 고황경 박사의 호를 따 바롬 교육이라고 부른다. 바롬은 ‘바르다’의 의미다.)

-그런 교육의 효과는 있나.

“2002년부터 8년간 1500여 명의 학생이 기업체에 인턴실습을 갔다. 그 중 절반가량이 해당 기업에 남았다. 남을 배려하고, 공손하며,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대학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학의 역할은 교육·연구·봉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학마다 이념과 철학이 다르다.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독창적인 게 경쟁력이다. 글로벌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성숙한 인재를 키워내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타 여대와 다른 독창적인 것은 .

“요즘엔 글로컬(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 국제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진)이란 말이 일반화돼 있다. 국제화를 하면서도 우리의 귀중한 유산과 가치관을 살리는 게 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영어 실력을 갖춰 세계와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글로컬을 실현하려는 학교가 우리의 독창성이고 경쟁력이다.”

-이화여대나 숙명여대에 이은 만년 3위 여대라는 지적이 있다.

“영어 실력으로 한번 겨뤄 보자. 우리가 가장 철저하게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실력은 서울여대생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재학생 대부분이 SWELL(서울여대 영어인증제)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방학 중엔 40일간 캠퍼스 안에서 합숙하며, 24시간 영어로만 말하고, 듣고 쓰는 집중훈련을 받는다. 학기 중엔 매주 14시간씩 12주 교육을 받는다. 학교가 우수 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해 무료로 배울 수 있다.”

-프로그램이 상당히 빡빡해 보인다.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전화나 e-메일도 영어로만 주고받아야 한다. (웃으며) 어떤 여학생은 잠꼬대도 영어로 하더라. 과정은 1~8단계가 있는데 4년 동안 모든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7단계 정도만 되면 외국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학생도 영어를 술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영어 실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학교가 아이들의 실력을 개런티(보증)한다.”

-학생들의 외국어 실력을 총장이 보증하는 학교는 처음 봤다.

“졸업생들이 외국인 회사에 취업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외국으로 유학 간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우린 영어권 대학에 학기 중 유학 가는 학생들이 4주간 미국·캐나다·러시아 등의 외국인 학생들과 교내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공부하는 바롬 국제프로그램(BIP)이 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운영 중이다. 7월 초에 시작하는데 전체 학생 130명 중 반은 외국 학생이고, 반은 우리 학생들이다. 이런 게 진정한 글로컬이다.”

-왜 글로컬인가. 외국 학생들이 한국을 배워서 그런가.

“우리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과 섞여 생활하면서 국제적인 소양을 키운다는 점에서 국제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학생들은 4주간 한국에 관한 12개 과목을 배운다. 우리의 고품격 문화를 배운다. 우리 대학과 협정을 맺고 있는 캐나다 말라스피나대 교수님들은 이 과정이 좋아서 여러 번 BIP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육중심대학을 지향한다면 다른 대학과 어떤 차별성이 있나.

"2005년부터 시작한 봉사-학습(Service-Learning) 프로그램이다. 강의실 안에서 배운 지식을 강의실 밖의 사회에 나가 실천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영문과 학생은 셰익스피어 문학을 배우면 지역사회의 중·고교로 가서 학생들에게 영어나 영어 연극을 가르친다. ”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환원인가.

“그렇다. 정규 교과목과 봉사 개념을 접목한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우리만 하고 있다.”

강홍준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1943년 서울생. 이화여고와 서울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트주립대에서 석사, 연세대에서 사회복지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9년간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세 번 연임해 전국 4년제 대학 현직 총장 중 최장수다. 캠퍼스 내 곳곳을 누비며 전등 하나까지 챙길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하다. 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이며, 남편은 한국납세자연맹 이필우(75) 명예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