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정안 지켜보자”는 청주시장의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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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원안 수정’ 천명으로 세종시 문제는 2단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다음달 중순께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를 골간으로 하는 수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제는 여야 정치권과 시민단체, 충청권 등이 논쟁의 열기를 식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수정안을 기다려야 한다. 수정안이 나온 뒤에 과연 대통령의 말대로 국가와 해당 지역 주민을 위한 것인지, 세종시를 자족 명품도시로 만들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안이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거부를 천명하고 투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런 것은 주민이 안방에서 수정안의 밥상을 받기도 전에 반대자들이 부엌에 뛰어들어 밥상을 차버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는 지금 정기국회 회기 중이다.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은 겹겹이 쌓여 있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은 내일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예산심의를 거부하면서 세종시 원안 사수 장외투쟁에 돌입하고 있다. 민주당과 선진당의 지도부는 주로 충청 지역을 돌면서 세종시 수정에 대한 반대 열기를 고조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불필요한 지역정서를 자극하게 된다. 세종시 개선은 지역 들판이 아니라 중앙의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다. 자유선진당은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하고 사퇴서를 총재에게 맡기기로 했다. 지난번 미디어법 파동 때 민주당 의원들이 사퇴서를 당 대표에게 냈다가 철회한 바 있다. 신성한 의원직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가장 순리적인 해법은 수정안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상우 청주시장의 언급은 주목할 가치가 크다. 그는 “정부의 대안을 지켜보면서 청주시가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듯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정책은 약속대로 지켜져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만 세계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종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고뇌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안 수정에 대한 충청권의 비난 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충청권의 기초자치단체장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다. ‘수정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고뇌’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수정 자체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수정안이 주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는 게 자치단체장의 의무이자 능력일 것이다. 이런 태도는 연기군수뿐 아니라 지방선거로 선출된 충청 지역의 모든 지도자가 새겨야 할 것이다. 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은 내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는 세종시 수정의 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주민의 달아오른 정서에 추종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복(公僕)이란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더군다나 수정안으로 인해 지역의 이익까지 충족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세종시 문제는 소리(小利)와 국익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험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