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노조 경쟁자는 사용자 아닌 중국 노동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해외에 강성 이미지로 알려진 한국의 노조 간부가 외국계 기업 본사를 직접 찾아가 "투자해 주면 노사 협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호소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최근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투자유치단'을 구성해 미국.일본을 다녀온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이화수(사진)의장은 실제 이런 상황과 마주쳤다.

그를 만난 자동차 내장재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리어(Lear)사 크리스토퍼 민 부사장은 "TV에서 한국의 전투적 노조만 보았는데, 실제와 다를 수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 업체인 알박동북의 오노 신이치 사장은 "감동받았다. 망설여온 경기도 현지법인 투자에 드디어 확신이 섰다"고 밝혔다. 극적인 반전이 극적인 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 의장은 경기도 평택의 한 제지회사 노조위원장으로 1986년 파업을 이끈 이후 한국노총 산하 화학연맹 조직국장을 지내는 등 23년간 노동운동 현장을 지켜왔다.

현재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에는 16만여명의 노동자가 가입해 있다. 해외 투자 유치 출장을 다녀온 이 의장을 최근 만났다.

-외국 기업을 현장에서 살펴 본 느낌은.

"우리 노동조합의 경쟁자는 사용자가 아니라 중국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기업이 한국 대신 중국에 투자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는 그만큼 일자리도 줄어들게 된다. 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동반 출장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한국노동조합사에 전례없는 일이었다. 강성 노조 이미지 때문에 외국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데 함께 나가 이해시키는 게 좋겠다는 손 지사의 협력 요청을 받아들였다. 한국노총은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는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노동운동도 이제 전환점이라고 보는가.

"지난 30년간 파업을 통해 요구조건을 관철해 온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은 분명하다. 조합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공존공생과 국익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힘을 보탤 줄 알아야 노동운동도 성숙해진다."

-외국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임금.노사관계.투자환경 등을 다 파악해 놓은 눈치였다. 한국노총 경기본부가 수도권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내 노동단체 중 최대의 단체라고 했더니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노조가 외국인 투자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 아닌가.

"수도권은 이미 외국 기업을 놓고 중국과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가 물류나 인적 자원에서 앞선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아직은 잘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노사관계도 이제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구성 인자다."

-다른 국내 노동운동가에게 전할 고언은 없나.

"시대가 변했다. 이번 투자유치단처럼 노.사.정이 같은 배를 타야 한다. 낡은 개념으로 치부되지만,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진정한 노동 복지의 출발점인지 고뇌해야 할 때라고 본다."

한편 경기도는 손 지사와 이 의장을 포함한 이번 해외투자유치단이 지난 2~7일 미국.일본의 10개 업체를 순방해 ▶투자양해각서(MOU) 5건 5920만달러▶투자합의서(MOA) 4건 2160만달러▶투자의향서(LOI) 1건 6000만달러 등 모두 1억408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철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