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숙자 인구조사…60만명 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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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은 끝을 모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덕에 미 주류사회는 비단옷을 입은 것 같다. 그 옷자락 끝에 터져 나온 실밥이 노숙자와 부랑인이다.

이들은 화사한 봄날의 거리에서 해어진 담요같은 겉옷들을 껴입고 이리저리 뒹굴다가 구걸하기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진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 무심코 지나던 행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사상 최대의 인구조사를 하고 있는 미 정부가 지난달 말 노숙자 수를 세는 3일간의 작전을 완료했다. 동원된 조사요원과 자원봉사자는 모두 10만명. 집계원들은 노숙자 수용소.무료급식소, 그리고 공원벤치.다리밑 등 길거리를 찾아다니며 사흘간의 조사를 마쳤다.

인구조사를 진행한 통계조사국은 작전을 시작하기 수개월 전부터 수용소.급식소 등 노숙자를 지원하는 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했다. 노숙자들의 반항적.반사회적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협조를 얻어낼 사전작업이 필요했던 것.

통계조사국은 1990년의 조사가 너무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숙자 조사의 경우 사전 준비없이 하룻밤새에 벼락치기로 이뤄졌다. 따라서 노숙자들의 반감으로 조사요원이 아예 수용소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 결과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노숙자 수가 40만명으로 발표됐다.

통계조사국은 이번에는 조사방법을 여러모로 개선했고 노숙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통계조사국은 수용소 내부사정을 잘 아는 노숙자를 높은 임금을 주고 임시 조사요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 이번에 활동한 조사요원들은 오렌지와 노랑색이 섞인 조끼를 입었다. 90년에 실시된 지난번 조사에서 요원들이 입었던 흑백조끼가 경찰조끼와 비슷해 노숙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지원단체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덕분에 이번 조사에서는 수용소 노숙자의 80~90%가 설문지에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적어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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