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下. 외교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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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무대행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난 27일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이제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코소보 문제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정책, 군비 통제 등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게 수정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날 북극 인근 바렌츠해의 러시아 핵잠수함 '카렐리야' 호는 새로운 군 통수권자 탄생을 기념하는 축포를 발사했다.

오전과 오후에 한 기씩 발사된 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8천㎞를 비행, 극동 캄차카 반도에 있는 목표물을 명중했다.

이 두가지 사건은 앞으로 러시아의 외교정책에서 푸틴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외교 전문가들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말기에 채택된 신(新)군사 독트린의 '핵무기의 선제사용권' 과 '주적(主敵) 개념' 에서 나타난 ▶러시아의 목소리 높이기▶미국 주도의 일극체제에 대한 변화 모색 및 대응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수정이 바렌츠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상징하듯 군사력, 특히 핵무기 사용의 추구로 나타날 경우 서방과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푸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월 국가안보회의에서 입안한 보다 광범위한 핵무기 사용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새 안보전략을 승인한 장본인이다. 그는 대선 전 지방 순시 때도 러시아가 '핵강국' 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유력 시사주간지 '이토기' 의 군사평론가 알렉산드르 골츠는 "러시아의 군사력이 경쟁국들과 비교해 힘의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에 방어적 목적에서 핵무기의 선제사용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 이라면서도 "핵사용을 규정한 안보전략 개념은 서양과의 대립구조로 회귀할 수 있음을 뜻한다" 고 분석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모든 국제문제에서 제 목소리를 내다보면 경제에 상당한 주름살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부터 원유가 인상으로 인한 '오일 달러' 로 경제가 다소 회생하긴 했지만 다른 산유국들이 29일 원유 증산에 합의함으로써 더 이상의 오일 특수를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분야별로 서방의 투자와 기술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푸틴이 군사력 강화, 다극적 세계 구조 형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서방과는 대립이 아니라 '러시아가 동등한 대접을 받는 조건 하에서의 진정한 협력' 을 원한다" 고 수차례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24일 푸틴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에서 채택된 신외교개념이 주목을 끈다. 서방과의 갈등을 최대한 피하는 가운데 경협 실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통상활동에 대한 외무부의 지원 기능이 강조됐다.

그렇다 해도 '대국(大國)러시아' 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푸틴과 서방에 협조적이었던 '옐친의 러시아' 를 기억하는 서방은 아무래도 러시아의 '몸값' 에 대해 기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푸틴의 당선이 확정된 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구체적인 논평을 자제하면서 푸틴이 과연 '러시아의 부활' 이란 자신의 열망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노선을 추구할지 지켜보고 있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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